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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자(牧者)와 폭군(暴君) - 2013.8.21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1 조회수42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8.21 수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판관9,6-15 마태20,1-16

 


목자(牧者)와 폭군(暴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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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목자와 폭군’을 주제로 하여 이런 저런 묵상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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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새삼스럽게 깨닫는 진리가 있습니다.

에어컨 장치가 잘 되어 있는 건물이나 차 안에 있다가 밖에 나갔을 때
새삼 온 몸으로 체험하는 더위의 현실입니다.

안이 시원하면 저절로 밖도 시원할 줄 착각하기 쉬운 게 아마 인간의 한계일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을 말해도
실제 가난해 보지 않으면 가난한 현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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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 깨닫는 사실은 못 배우고 못 난 사람은 못 살고,
잘 배워 잘 난 사람은 쾌적한 환경에서 인간 대우를 받고 품위를 누리며
잘 산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삶의 자리는 각기 천차만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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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공동체 같은 유토피아 현실은 불가능하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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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역할은, 국가의 역할을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나 세상 국가에는 목자 같은 지도자도 있고, 폭군 같은 지도자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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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민주주의가 목표하는 바도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 유토피아 공동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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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링컨은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본, 민권, 민생의 민주주의 3대 원칙을 천명했고
이에 더하여 국가가 괴물이 되는 것을, 지도자가 폭군이 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공정선거에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3권 분립의 독립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역시 공정보도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함으로 예언자적 사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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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분립이, 언론자유가 유명무실해지면 국가와 지도자는 주인은
민중을 억압하는 괴물이 되어 무분별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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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독서 판관기와 복음 말씀이 오늘에 주는 교훈은 참으로 깊고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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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은 중앙집권적 왕정의 통치제도에 늘 비판적이었고
하느님이 목자가 된 지방자치적인 민주권력을 선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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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요탐은 예언자를, 가시나무는 폭군 아비멜렉을 상징합니다.

요탐의 민담은 바로 오래 된 반왕정(反王政) 전통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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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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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유로 권력의 윗자리를 사양하고 제자리를 지킨
올리브 나무, 무화과나무였지만,
가시나무는 나무들 위에 군림하여 폭력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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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 성경의 주석이 정확합니다.

 

‘지배 권력은 자유를 돈에 팔아버린 백성의 행위로부터 시작된다(판관9,4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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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절은 민담을 이용하여 부당한 정치권력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다.
즉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가 권력을 행사하려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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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가 제공하는 안전은 백성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덫일 뿐이다.’
(해설판 공동번역성서383쪽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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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현대 세상 곳곳에서 목격되는 독재체제 국가와 그 국민에 대한 모습 같습니다.

강우일 주교님도 국가를 다시 생각한다는 글에서
국가에 의해 유린되는 인권을 생각하며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녹색평론: 지상의 평화를 위하여5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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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가도 역사의 한 산물이지 절대적 가치가 아님을 증언합니다.

하여 예언자들이 반왕정을 주장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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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만이 왕이시며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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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하느님을 닮아 폭군이 아닌 목자가 될 때 이상적인 국가입니다.

민본, 민권, 민생이 보장된 나라, 3권이 분립되고 언론이 살아서
폭군의 괴물이 아닌 목자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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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복음의 하느님 나라의 이상적 목자 상을 보여줍니다.

바로 복음의 포도밭 주인은
관대하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처신을 닮은 착한목자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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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본, 민권, 민생이, 또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똑같은 소득이 보장된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분배정의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두가 궁핍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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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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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게 착한목자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물론 위정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이해타산이 밝은 비즈니스맨이나 CEO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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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서 얼마 전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본소득’이란 이상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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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는 게 기본소득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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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변화 없이는 일자리 증가는 불가능하고,
경제는 축소균형의 시대로 감으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삶을 자치적, 협동적으로 꾸려나가는 방법밖에는
활로가 없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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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도 일이고, 사회봉사도 일이고, 예술도 다 일이니까
국민 모두가 국가로부터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지급 받으면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못하던 일도 하게 된다는 것이며
기본소득이 보장됨으로 마침내 노예노동도 종식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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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많은 기본소득제도 이지만 출구가 막힌 자본주의 사회에
무궁무진한 영감을 주는 제도입니다
(녹색평론131호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기본소득 왜 필요한가?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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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묘하게도 오늘 복음에서 착한목자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포도밭 주인은
노동량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필요한 ‘한 데나리온’의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효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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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 주는 것,
바로 이게 하느님의 이상, 예수님의 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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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는 물론 지도층에 모든 이들이 모델로 삼아야 할 착한목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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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누구에게나 똑같은 성체의 양식을 제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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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성체는
그대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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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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