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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얼룩진 옷,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타협해서 입은 옷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1 조회수479 추천수0 반대(0) 신고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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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늘 나라의 혼인잔치는 준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 입니다.
하지만 실상 그리스도와의 결합에 100% 합당한 사람들은 드물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기로 하셨던 하늘 나라가 준비된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부터 불러 내시어 약속하신 하느님의 땅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늘로 오를 수 없기에 대신에 하느님께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이 될 수 없었던 까닭에 ( 선악과 열매 - 하느님처럼 )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으며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다시 오십니다. 

제7일의 첫 창조와 제8일의 새 창조는 다릅니다. 
첫 창조는 아담에 의해서 였지만 새 창조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교리서 349. 
제7일에는 첫 번째 창조가 완성되었고 제8일에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 이처럼 창조 업적은 구원이라고 하는, 더욱 큰 업적에서 절정에 이른다. 첫 번째 창조는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창조에서 그 의미가 발견되며 정점에 도달한다.이 새로운 창조의 찬란함은 첫 번째 창조를 능가한다.

인간의 첫번째 탄생과 인간의 두번째 탄생이 있다고 그동안 말했습니다.
육적인 몸의 탄생과 '위로부터 다시 나는' 영적인 몸의 탄생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몸이 있는데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영적인 몸은 유령과 같은 그러한 존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영적인 몸'이다고 하셨으니 몸의 상태이고 유령의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창세기 때에 뱀의 유혹은 인간이 "하느님 없이" 하느님처럼 되게 한 것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있어>가 되어 하느님처럼( 신성 참여) 되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악과 열매를 통하여 하느님처럼 되려고 한 것과 다릅니다.
인간이 하늘로 오를 수 없기에 대신에 하느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이 모두는 그 연결고리에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서 계십니다. 
조금 전에 '하느님 없이' 에서 '하느님 있어' 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시지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있어>에서의 사람과 하느님의 연결고리인 그리스도께서
바로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 '하느님 있어' 이다 >는 설명입니다.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통해서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옷'을 벗어버리고 맙니다.
그리스도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혼인잔치에 갖추어야 할 혼인예복이었습니다.
바로 < '하느님 없이' 에서 '하느님 있어' >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느님처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계획'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예복을 혼인잔치에서 갖추어 입지 못했습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신 말씀이십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은 것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옷을 받았지만 끝까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이들은 적은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 22 참조 / 그외 마르, 루카)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날,
그는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가 선택한 이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마태 24, 31 참조 / 마르, 루카)

그리스도의 옷에서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으로 얼룩진 옷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안에서 참조)
현 교황님께서는 '고통받는 양들의 체취가 배인 몸이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자기 몸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결합된 몸'이 구원의 생명에 이릅니다.
즉, 악에 의해서 고통받는 이들과 일치하는 '그리스도의 혼인예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잔치에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혼인잔치에서 선택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그리스도)를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영적인 몸인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에 타협한 얼룩진 옷을 입은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사랑의 힘'에서 무기력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 ...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요묵시 3, 1 - 6 참조)



글의 전체 이해를 위한 게시글 참조 (필독)

(1) '하늘이' [기드온] 참조  +  (2) 사랑을 없애버린다 의미 (사랑은 독이 되어)




교황님의 교서 참조

복자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의 일부입니다 (출처; 구원에 이르는 고통)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적 고통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고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구원의 사명을 띠고 보내심을 받은 하느님의 아드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악을 바로 그 뿌리에서부터 쳐부수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이 악의 뿌리들은 죄와 죽음이라는 땅 속에 뻗쳐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구체적인 죄들의 결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영생"은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결정적인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첫째로는 원죄와 더불어 비롯하여 악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린 죄의 지배를 불식하시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성화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 오해를 받는 일을 겪으셨을 뿐아니라 점점 더 소외를 당하고 적의에 둘러싸이게 되셨으며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음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상>

(교서 글, 이해 참조) 게시글 중에서 '오하늘 요세피나' 게시글의 본문 참조 
=>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2012년 여름 곧, 2013년 2월20일로부터 7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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