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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3 조회수578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greatest and the first commandment.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Mt.22,36-38)
 
 
제1독서 룻 1,1.3-6.14ㄴ-16.22
복음 마태 22,34-40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이라는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이 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 지은 무덤으로,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어져 있는 작품이지요. 이 타지마할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흰 대리석에서 나는 빛나는 윤택이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답니다. 깨끗이 닦고 청소를 해도 그때뿐이지 채 한 달이 못되어서 아름다운 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 이유를 전문가들에게 의뢰해서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유가 인근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부터 생긴 공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지요.

인도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타지마할을 보존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서, 타지마할 반경 45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공장의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어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에 따라 근처의 모든 공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타지마할의 흰 대리석은 다시 빛이 계속해서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대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즉, 나 혼자 잘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너 나 잘해.’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연대적인 사랑의 실천이 있을 때에 비로소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바로 지금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너만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 이 사랑인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랑이 중요하고 그래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멋 옛날부터 우리에게 전해져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먼 옛날에 이미 주어졌던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십니까?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사랑’에 있다는 것이며, 지금 역시도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이야기해주시지요. 그런데 왜 이 사랑을 남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을까요?

자신의 사랑 실천은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들의 행하는 사랑의 실천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또 기쁘게 전해 줄 수 있는 이타적인 모습에서만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니까요.

웃음은 두 사람 간의 가장 가까운 거리다(빅터 보르게).

 
자전거를 미리 점검하지 못해서 펑크난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정작 급하게 타야 할 때 탈 수 없었네요.
내 사랑도 미리 점검하세요. 후회하지 마시고요.

 

기도(‘AMBLER’ 중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가 인터뷰할 때의 일이다. CBS 아나운서인 댄 래더가 물었다.

“수녀님은 기도할 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하지 않고 듣습니다.”

의외의 답변을 들은 래더가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하느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분도 듣고 계시지요.”

당황한 댄 래더에게 테레사 수녀가 말했다.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테레사 수녀님의 이 말씀이 이해되십니까? 사실 우리들은 기도라고 하면 무엇인가를 바라거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들음이 바로 기도이고, 이 들음을 통해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간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기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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