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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1주일/좁은 문/글:이 기양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4 조회수790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루카 복음. 13,22-30

 

오늘의 묵상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보편적입니다. 아무도 그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일정한 한계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구원의 문이 좁은 문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며, 그 문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참된 진리를 찾으며,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 우리 신앙의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왜 믿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도착점은 같습니다. 온갖 이론과 지식도 결국은 구원에 대한 안내일 따름입니다. 구원의 이론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대로 좁은 문입니다. 구원의 문은 좁습니다. 하지만 좁아도 들어가야 합니다. 경쟁률이 높기에 좁은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낮추고 작아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기에 좁은 문입니다. 작아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은총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거듭해도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러한 은총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작아지는 것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약한 모습을 수없이 체험합니다. 비참한 일이나 억울한 일로 상처받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일을 불평과 분노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작아지는 생활의 출발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 ☆ ☆ ☆ ☆ ☆

    좁은 문 죽어서 연옥에 가게 된 자매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곳에 본당 신부님이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뜻밖의 장소에서 신부님을 뵙게 되자 어찌나 반가웠든지 큰소리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저는 신부님께서 계시던 본당의 신자였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신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잘 아는 신자 방문이라도 오셨습니까? 그러자 신부님이 황급히 자매의 말을 막으며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옆에 주교님께서 쉬고 계십니다. 물론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신자라는 이유로, 또 신부라는 이유만으로는 천당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직위보다는 복음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는 심오한 가르침이 짧은 이야기 안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루카 13,24)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루카 13,26) 하고 인간적 친분을 내세워 들어가려고 애원하지만 집 주인은 야박하리만치 문을 닫아 버릴 것입니다.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7). 아무리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친분이 있어도 악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말씀하시지요.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첫째인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을 뜻합니다. 하느님께 뽑혀서 첫째가 된 그들도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꼴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편 이 말씀은 이방인과 세리들, 그리고 창녀들도 비록 그 출발은 늦었지만 하느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따른다면 첫째가 될 수 있다는 인생역전의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성공 기준은 자녀 교육을 얼마나 잘 시켜서 어떻게 출세를 시켰으며, 재산은 얼마나 모았으며, 얼마나 사회적 직위가 높은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 조건을 갖추면 첫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요 행복한 집안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의 기준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마음에 들고 첫째로 꼽힐 사람의 기준은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느냐'하는 것이 하느님 뜻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이면서도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의 관점을 지향해서 살아가며 그것밖에 모른다면 그는 세상에서는 첫째였을지 몰라도 죽어서 하느님 심판을 받을 때 꼴찌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면 혹시라도 세상에서는 덜 성공한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는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아주 구체적인 예가 루카 복음 16장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매일 호화롭게 먹고 입고 마시며 잔치를 벌인 부자는 자신의 재산만 믿고 살다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부자의 집 앞에서 땅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며 개들이 종기를 핥던 거지 나자로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뜻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번이 선택의 기로 앞에서 갈등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며, 힘없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에서 첫째 되는 비결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료 : -서울 대 교구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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