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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5 조회수688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일
 
 

"Lord, will only a few people be saved?”
He answered them,
“Strive to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many, I tell you, will attempt to enter.
(Lk.13,23-24)
 
 
제1독서 이사 66,18-21
제2독서 히브 12,5-7.11-13
복음 루카 13,22-30
 
종종 자신의 신앙 체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이야기하시고, 또한 이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의 굳은 믿음을 내세우십니다. 솔직히 이렇게 내세우는 신앙은 위험성이 많습니다. 개신교에서 많이 말하는 소위 신앙 간증이라는 것, 이는 잘못된 길로 갈 확률이 매우 많습니다. 주님께서도 치유를 해주신 다음, 치유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며 자신의 은혜 받음을 자랑하라고 하지 않으시지요. 오히려 그 기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바로 당신의 뜻이 잘못된 뜻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 하나 하나를 다 사랑하셨지만, 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대중성은 사랑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면서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에도 그 자리를 물러나 숨으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즉,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대중심리를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시는 바입니다. 우리들의 생각 중에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라는 것,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뭐’ 등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과 생각을 그대로 따르고 답습하려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특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한 행동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통해서는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많은 사람들이 가려하는 넓은 문으로 가려고 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좁은 문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가지고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벗을 위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서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어렵고 힘든 길이기에 ‘좁은 문’으로 표현하신 것이지요.

많은 물질을 갖기 위한 노력보다는 많은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과를 9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과 하나가 없어서 열 개를 채우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나눌 수 있는 사과를 9개나 가지고 있다면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사과를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이를 누구와 함께 나눌 수 있는지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일수록 소유욕에 집착을 보인다고 하지요. 지금 내 자신은 무엇을 더욱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소유욕에 집착을 보이고 있다면 그만큼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로는 절대로 주님께서 들어가라고 하신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좁은 문으로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는 우리를 꿈꿔 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햇볕과 그늘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김재진).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따르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벤쯔 쎄단

어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주일 새벽, 여러분에게도 전해드립니다. 이 이야기 보시고 크게 웃으시고, 기쁘고 행복한 주님의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식 자랑 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이 할머니께서는 노인정에서 친구 분에게 아들 자랑을 하십니다.

“에구! 우리 아들이 최고급 ‘벤쯔 쎄단’을 샀는데 얼마나 좋은 지 몰라.”

그런데 친구 할머니의 귀가 상당히 어두운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휴! 저 할망구는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맨날 자랑질이야? 이제는 하다하다 안 되니까 ‘배추 세 단’ 산 거 가지고도 자랑하구 자빠졌네.”

그렇습니다. 귀가 어두워서 ‘벤쯔 쎄단’을 ‘배추 세 단’으로 잘못 들으신 것이지요. 그러나 그 할머니는 친구가 부러워하지 않고 핀잔만 주니까 다시 힘주어서 말합니다.

“좋으니까 자랑을 하지. 그 벤쯔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이에 친구 할머니도 지지 않고 말합니다.

“아이고! 그까짓 배추가 좋아봤자 그게 배추지 뭐. 배추에 금테라도 둘렀남?”

이런 식으로 둘이 티격태격 싸우는 것을 보고 있었던, 노인정 최고 어르신인 왕 할아버지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세요.

“야! 시끄러! 이 할마시들이 그냥~~ 왜 아까부터 ‘빤스 세 장’ 가지고 난리들이야? 그냥 쳐 입어!”

서로가 자기가 듣고 싶은 데로 듣고, 들리는 데로 말한 것이지요. 어쩌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 역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듣지 못하고, 또 그래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욕심만을 내세워서 주님의 뜻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 주님께서 우리 앞에 준비해 놓으신 좁은 구원의 문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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