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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연시한 것들을 가르친 책임의 무게 [불행한 수도자들과 사제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5 조회수396 추천수0 반대(0) 신고

 

불행하여라, 위선자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눈먼 인도자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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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은 이중성되지 않아야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며 말로써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적에서 행적은 말씀을 보여주셨고 말씀은 행적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이시니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그래서 그와같은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렇지 아니한데도 거짓된 잘못을 주입시킵니다. 그런 까닭으로 진리와 진실이 아닌 오류와 거짓을 당연시 했다고 봅니다.

어떤 질병도 초기에는 속히 치료가 쉽지만 만성이 되어지면 치료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치료가 늦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여러가지로 거짓되고 잘못된 것들을 당연시 여김으로써 하늘 나라의 문에서 멀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지 않은 것들이 마치 진리(진실)인 것처럼 날뜁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거짓된 것들이 첫째가 되었고, 진실한 것들은 꼴찌가 되었습니다. 모욕을 받고 조롱을 당하며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달라집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며,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말씀대로 되느냐' 하고 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씀과 행동이 서로 다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여 돌이키려 하기 보다는 거짓의 현실과 타협하면서 거짓됨에 안주하려고 합니다.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잘 달려갑니다.

예를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이를 당연시 합니다. 그리하여 이스카리옷 유다는 영웅으로 변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갈라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통을 미화합니다.물론 십자가 수난의 길은 숨겨진 '그리스도의 신비'이지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입니다" (복음서 참조)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떠나가지만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신비'가 그러 했었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불행한 것과 같이 지금 시대에서도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붙잡혀 있는 이들 역시도 불행합니다. 이루어야 할 선과 피하여야 할 악에 대한 의심을 버려야 마땅합니다

사랑은 힘들며 고생하고 고난을 겪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의 힘'에서 무기력한 것이 당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말씀대로 되느냐' 하며 거짓된 것들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루어야 할 선과 피하여야 할 악을 의심하고 예수님의 말씀(가르침)에서 반대로 잘 달려가는 불행한 일이다 할 것입니다.

구원과 생명의 문은 좁고, 멸망과 죽음의 문은 넓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생명과 멸망의 '두 길'이 언제나 제시되어져 있습니다.진리가(진실이) 아닌 것들을 당연시 한다고 거짓이 진리일 수는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길들을 거쳐서 왔기 때문입니다.거짓된 것들을 가르침받아 왔으니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모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에어리언과 같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그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거짓과 오류를 당연하게끔 가르친 그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자들과 '말씀'에 영적으로 눈 먼 인도자들은 '당연한 거짓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다른 말씀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에 온전하게 깨어있슴 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적으로 죽은'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 예수님을 떠납니다.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 66 참조)고 기록하여 전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으로 머무르는 참된 제자들이 (수도자들, 사제들이) 돈의 힘과 불완전한 규정들의 힘과 거친 삯꾼들의 지배를 극복해 내고 '사랑의 힘'으로 인류에게 주님의 평화와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깨어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들의 악과 죄'에서 멀어져 예수님의 힘으로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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