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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실한 삶 - 2013.8.27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7 조회수46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8.27 화요일 성녀 모니카(332-387) 기념일

1테살2,1-8 마태23,23-26

진실한 삶

오늘은 ‘진실한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 진실한 사람이 그립습니다.

진실 자체가 위로와 힘이요 감동이자 치유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보다 마음을 끄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하여 ‘참 진(眞)’만 들어가는 말만 들어도 반갑습니다.

진실(眞實), 진리(眞理), 진정(眞情), 진심(眞心), 진인(眞人), 진국(眞-) 등

무수합니다.

진선미(眞善美)라는 말에서 진(眞)이 앞자리에 있는 것도

모든 사물의 바탕은 진(眞)이 근본임을 깨닫게 합니다.

 

진실한 사람을 찾는 다음 시편의 절규는 그대로 오늘에도 해당됩니다.

‘경건한 자 끊어져 없사오나, 주여 구하여 주소서.

아담의 후예 중에 진실한 사람이 없나이다.

저마다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시편12,1-2).

예나 이제나 부정적 인간 현실은 그대로 같습니다.

진실의 원천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안과 밖이 같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아침 미사대장에 싸인 하던 동료 수도사제의 글씨에 눈이 멎었습니다.

‘이사악(離邪惡)’, 구약의 이사악 이름입니다.

‘사악에서 분리됨’을 뜻하는 한자 풀이가 볼 때 마다 신선합니다.

바로 진실한 삶, 순수한 삶에 대한 원의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도형제의 ‘이사악(離邪惡)’ 수도명입니다.

오늘 1독서의 바오로 일행과 복음에서

예수님의 지탄의 대상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자가 진실한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표리부동의 위선적 사람들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진실한 삶이 될 수 있겠는지요?

첫째,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말 그대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삶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일 때 진실한 삶입니다.

 

이래야 아첨하는 말도 하지 않고 탐욕도 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영광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떠날 때

저절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게 되고 사람들의 영광을 찾게 되어

위선적 삶으로 전락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이야 진실 된 말씀, 흙도가니에 일곱 번 닦인 순은이오이다.’

(시편12,7).

아침 성무일도 중 마음에 와 닿은 시편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그대로 말씀 사랑으로 직결됩니다.

말씀은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진실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7ㄴ).

진인(眞人) 나타나엘을 발견한 예수님의 환호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틈나는 대로 말씀을 되새겼던 나타나엘임이 분명합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이요 지혜입니다.

말씀의 빛이 사라지면 분별의 지혜도 사라져 눈 먼 사람이 됩니다.

내면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차기 마련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위선자, 눈 먼 인도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러합니다.

완전히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어리석음을 범한 사람들입니다.

표리부동의 위선적 삶입니다.

새삼 말씀과 하나 될 때 지혜롭고 진실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온화하게 처신하는 삶입니다.

온화라는 어감도 뜻도 반갑습니다.

역시 ‘온(溫)’자가 들어있는

온순(溫順), 온정(溫情), 온유(溫柔), 온화(溫和), 온후(溫厚)란 말뜻도

참 좋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온화하게 처신합니다.

바오로의 고백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온화함’에 대한 주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화함은 특별한 덕으로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권한과 권위를 지닌 이들,

그러면서도 손아랫사람들에게 군림하지 않는 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역시 온화한 분이셨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온화를 찾아 봤습니다.

‘마음씨나 태도가 조용하고 부드러움.

예)평소 성품은 온화하시지만 불의는 절대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대로 옛 선비 상이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평소 예수님은 온화하셨지만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무지에는 즉각 분노하십니다.

하느님은 진실과 순수의 원천입니다.

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때 진실한 삶입니다.

시편 26장 한 진인(眞人)의 고백이 가슴을 칩니다.

“주여, 나의 옳음을 가려주소서. 깨끗한 길을 걸어왔나이다.

주님을 믿었삽기에 흔들림이 없었나이다.

주여, 나를 샅샅이 알아보시고 시험하소서.

내 속 내 마음을 불에 달구어 보옵소서.”(시편26,1-2).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의 진실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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