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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선택했던 가난 (어느자매님의 질문에 대해)
작성자김은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30 조회수1,643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느 자매님이 저에게 주신 질문이

주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느냐고요.

저는 그 쪽지를 읽고는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졌어요.
충격이랄까?
아! 내가 다른사람에게 되게 가난하게 보이는 구나! '하는 충격이요.

그리곤 곰곰이 묵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정말로 가난했었나?부터.

그러면서 제가 주님을 만나서 살아온 삶을 비디오처럼 되돌려보았어요.

가난한 남편을 만났네요.
그래도 열심히 아이들 낳고 살았네요.

그러다가 우연히 빚을 안고 사우나를 했네요.
사업하는동안에 돈을 열심히 벌었네요.

곧 imf에 사우나가 날라갔네요.
그런데 운좋게도 백화점에 어린이 놀이터를 인수했어요.

돈을 좀벌었어요.

그리곤 우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어요.
여기까지는 별로 가난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미국에 와서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의절당하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되었네요.

그리곤 미국에서는 정말로 가난했어요.

근데!
이렇게 쭉 저의 가난을 찾다보니,
어느순간에 벼락과 같이,

'아! 이 가난은 내가 선택한 가난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제가 미국비자를 준비하고 있을때에,
제가 다니던 성시간의 모든 식구들은 
각자의 기도를 토대로
제가 미국엘 가면 굉장이 크고 힘든 고난이 있을것인데,
되도록이면 가지 말라고 간곡히 조언들을 했어요.
모두가 다 자기들 기도응답을 이야기 하는데,
첨엔 황당하기도 하고!

하여간에 그모든 기도를 다 무시하고
제가 성체조배를 한 40일정도 했습니다.
직접 응답을 달라고요.

40여일이 지나고나자, 
"네가 원한다면 가거라, 그러나 어디에 가던지, 어떤 고난을 격던지, 너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것을 늘기억하여라!" 
는 응답이 들어왔습니다.

성체조배로 이 응답을 받았을 당시에
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가거라' 는 주님의 허락이었죠.

그다음의 이야기는 그저 통상적인 사랑의 마음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동안에 
종종 그때 주님의 응답은 '네가 그곳에서 격을 고난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이라고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지금 
제가 지난 10년의 가난과 고난이 바로 저의 선택이었음을 깊이깊이 통감을 합니다.

내가 그때에,
모든사람들의 기도를 거절하고,
주님의 깊은 응답에도 귀기울이지 않고,
이길을 용감하게 선택을 했고,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것이었구나' 하고요.

제가 그렇게 많은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라와 나라를 바꾸어서 터전을 옮겻으니,
그렇게 쉽게 새 터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데 쉬운일이 어디 있을까요?

새로운 곳을 알아야 살아갈수 있고,
말이 안통하니 더 답답하고,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나야하고,
돈은 왜 그렇게 힘들게 벌리는지!

사람들의 정서는 또 얼마나 다른지!

그런한 모든 일들이 
이민을 적응하는 기간동안에 일어날만한 일이지요.

이모든일을 다 제가 미국행을 선택을 함으로서 벌어진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주객이 전도 되어서 징징거린 제 모습이 확들어옵니다.
세상에나!

제가 격은 가난이 바로 제 선택에서 일어날수 밖에 없는 과정이이었군요.


아! 
주님, 제가 저의 선택을 당신탓으로만 돌리고,
그것이 저를 훈련시킨다고 미화하면서 
저의 일을 당신께 그대로 물렸군요!

이얼마나 죄송한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마음한가운데서 기쁨이 올라옵니다.
그러한 제 선택에도 주님의 은총이 곳곳에 지뢰처럼 터져서 저를 돌보아주셨다고 알아지니,
이제는 저의 선택에도 의미를 담아주시니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더불어 이 가난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나를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함께 일수 있게 해주었고,
가난래서 아이들을 볶지 않아서,
아이들이 공부로부터 자유로왓군요.
음..이건 제가 너무나 감사한부분이더군요.

아이가 대학을 가고 나서야,
아이가 할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를 이해하고
아이가 선택한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니 말입니다.

아이가 그 에너지를 자신이 좋아하는데에 쓰지않고
학원이다, 뭐다해서 
제 양껏 끌고 다녔으면, 
아마도 지금이면 아이와는 단절된체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드니
이것도 가난이 감사하군요.

지난 주말에 정원공사를 마치고
정원에서
온가족이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가 살아왔던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겪은 가난에 대해서 충분히 감사한것이,
자신들의 마음이 스포일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남편은 
우리가 선택한 이 가난의 시간들로 해서 자신의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고 말합니다.

저에게도 그 시간동안에 주님을 향해서 쉬지않고 나갈수 있었던 원동력이
가난이 준 선물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가난합니다.
근데 이제는 이가난에 대해서 좀더 주인으로서 당당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쪽지를 주신 자매님께도
자매님이 격는 가난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시기를 빕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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