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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 -겸손예찬- 2013.9.1 연중 제22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1 조회수385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3.9.1 연중 제22주일

집회3,17-18.20.28-29 히브12,18-19.22-24ㄱ 루카14,1.7-14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

-겸손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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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겸손예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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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삶을 기쁘게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진정 겸손하고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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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그 하신 일 놀라워라 주님을 찬미하라.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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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가

빛과 그림자 인생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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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었던 신문 칼럼 내용(한겨레8.31일자 23면:문강형준)과

제가 겪었던 예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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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인간’이란 제하의 참 의미심장한 글이었습니다.

<악의 투명성>이라는 책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우리 시대 문화의 특징으로 ‘긍정성(positive)’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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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엄연한 현실인 데 부정성을 뜻하는 그림자는 제거하고

온통 빛의 긍정성만을 찾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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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어 그림자가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림자 있어 빛이 있습니다.

그림자 없으면 빛도 없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게 삶의 진실입니다.

그림자가 삶을 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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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성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그림자 없는 인간’이 양산됩니다.

신체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한 성형수술 등 외모지상주의와

정신의 그림자를 없애는 시장(자기계발, 힐링)이 결합함으로써

삶 전체가 그림자를 없애는,

즉 완전한 긍정성의 문화로 가고 있다고 필자는 진단합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예언자적인 통찰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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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긍정성의 문화는 역설적으로 완벽한 부정성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림자 없는 인간’ 은 실체 없는 인간,

영혼 없는 인간 곧 시체, 귀신, 혹은 유령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성형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것, 자기계발의 성실함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소식 역시 넘쳐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나 공동체의 부정적인 단점의 그림자를

덮어버리거나 치워버리지 말고 사랑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간 밀까지 다칩니다.

적정량의 가라지 그림자가 우리 삶을 깊게 하고 사람이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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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는 제 민낯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오후 여러 시간을 자책하는 마음으로 지내며

이번 달 고백 성사 때는 꼭 죄를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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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은, 무력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불쌍한 두 행려자를

거칠게 모질게 대한 것이요 그들을 비굴하게 만든 것입니다.

저의 위선의 그림자가, 죄가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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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사람에게는 겸손하게 대하나

별 볼 일없다고 생각되는 무력한 이에게는 교만하게 대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입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인간 본성의 그림자 때문입니다.

바로 이게 인간 비굴성의 그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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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강복과 더불어 섭섭하지 않게 자선을 했습니다만

좌우간 제 위선의 그림자를 깨닫고 깊이 뉘우쳤던 오후였습니다.

누가 진정 겸손한 사람입니까?

오늘 말씀은 온통 겸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고스란히 사랑하여 받아들이는 이가 겸손한 사람이요,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끝자리에 앉으십시오.

끝자리가 상징하는바 그림자요 아래의 그림자로 내려가는 게 진짜 겸손입니다.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땅의 끝자리 그림자 세상에 내려 오셨고,

돌아가셔서는 저승의 끝자리까지 내려가셨다가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속속들이 끝자리의 그림자를 체험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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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있는 모든 사람 앞에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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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초대 받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윗자리가 아닌

누구도 싫어하는 그림자 같은 끝자리를 택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끝자리 그림자의 겸손 체험에 공동체에 정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형제들의 온갖 끝자리

'그림자들을 체험하는 겸손의 수련소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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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자리의 빛 자리만 택하다 보면

평화는 요원하고 공동체도, 사람도 되기 어렵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면서 깊어지고 진실해 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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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끝자리에 있는 그림자 같은 이들을 환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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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진짜 겸손한 사람입니다.

무력하고 무능한 자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 겸손은 환히 들어납니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겨야 합니다(以民爲天).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좌우명입니다.

 

사회가 존속하는 것은 이런 무수한 무력한 끝자리에 있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이들이 세상의 보물이요 하느님이 각별히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이들 그림자 같은 끝자리의 사람들을 깨끗이 제거하면 빛의 세상이 올까요.

빛의 세상이 아니라 악마의 세상이요, 이를 악의 투명성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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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불행한 끝자리의 그림자 사람들을 방치하면

긍정의 빛 속에 사는 이들의 삶도 위태하고 불안해집니다.

주변에 끝자리의 고통 받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을 놔두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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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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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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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보답이 아니라 하느님 자체가 보답입니다.

물이 타오르는 불을 끄듯 자선은 죄를 없앱니다(집회3.30).

어제 저는 초대하지 않고도 저절로 방문한

가난한 불구의 행려자들이었는데 무례하고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입니다.

후에 복음 묵상을 하면서 사회의 그림자들 같은

이런 행려자들을 통해 제 안의 죄악의 그림자를 생생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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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있는 곳, 끝자리에서 꽃자리를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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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함께 계신 끝자리는 어디나 꽃자리입니다.

굳이 끝자리를 찾아갈 것은 없습니다.

윗자리와 끝자리가 부단히 바뀌는 정주의 제자리 삶이요,

어느 자리이든 상관없이 항구히 살아가는 게 진정 겸손이요

이때 끝자리는 꽃자리가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끝자리로 낮아져 겸손해 질 때 바로 그 끝자리는 영광의 꽃자리가 된다는 역설의 영적진리입니다.

바로 히브리서가 묘사하는 그 현실이 정주의 제자리 시온 산에서, 이 거룩한 성전미사에서 그대로 실현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바로 겸손으로 제자리의 끝자리가 천상의 꽃자리로 변한 놀라운 영적현실을 보여줍니다.

겸손이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겸손한 이가 온유합니다.

겸손한 이의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기며, 주의 깊은 귀는 겸손한 이가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 진정 사람입니다.

겸자무적(謙者無敵)이라 겸손한 사람은 적이 없습니다.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출 때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습니다.

주님 역시 겸손한 이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반면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여 기꺼이 끝자리의 그림자로 내려가는 이들이, 끝자리의 그림자 같은 이들을 환대하는 이들이, 진정 겸손한 자들이요, 이런 이들이 주님과 함께 끝자리에서 꽃자리를 삽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시온 산’ 미사잔치의 끝자리에 겸손히 앉아있는

우리 모두를 영적 윗자리에 앉히시며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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