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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9월2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2 조회수56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년9월2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루카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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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필요한 세상이다.
함께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가난한 자의 입장이 되어보려 하지 않고서는,
내가 강제적인 힘에 무능을 느껴본 입장이 되어보려 하지 않고서는,
내가 볼 수 없는 입장과 억압받는 입장이 되어보려 하지 않고서는
사실 공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복음은 공감하는 마음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세상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세상의 기쁨에 공감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복음 역시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 그 의미를 잃고 만다.
실천 없는 공감은 더욱 비겁한 일이다.
모르기에 저지르는 죄가 아니라, 알면서도 저지르는 죄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 너무 많다.
상대적 가난이라는 정신 병리현상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는 생명들이
세상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분명한 죄악이다.
영어(囹圄)의 삶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도 수없이 많다.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을 파괴한 범법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양심에 의한 투신 때문에, 정치적 이념 때문에, 혹은 가진 자들의 폭행에 의해,
혹은 오해나 누명과 같은 억울한 세상의 판단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이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의 해방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이사야서61장1절을 펼쳐 읽으시면서, 세상의 악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공감해야 한다.
최소한 세상의 아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10일 복음묵상으로 올린 내용을 이어서 옮겨본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소명을 가지고 있다.
어느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 각자 의식하면서 사는 거다.
그분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소명의식이라 한다.

가난한 이들이 있는 한, 내 배부르다 해서 행복할 수 없고
묶인 이들이 있는 한, 나 홀로 자유로울 수 없고
진실을 보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내 눈의 성함에 기뻐할 수 없고,
억압이 존재하는 한, 자신에게 주어진 평화에 안주 할 수 없음이다.
어느 별나게 비범한 이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할 소명이다.
소시민적 안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요한1서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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