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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매일 '새 부대'되기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5 조회수807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복음: 루카 5,33-39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매일 '새 부대'되기 >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인 이무석씨가 상담하면서 겪었던 한 사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어떤 자매님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은 눈이 와이셔츠 구멍만 한 것 때문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육체적인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는 자존감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외모에 대한 불만족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도 없기에 자신에게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자매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자신보다는 동생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항상 그림이나 글짓기를 해서 상을 타 오고 노래도 잘 해서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는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이 자매는 자신이 그렇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눈이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눈이 작다고 놀렸던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자신의 모든 불행이 자신이 눈이 작은 것으로부터 온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무언가에는 그 탓을 돌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열등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매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핸드폰 때문이었는데,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진심으로 사과를 해서 받아주기는 했는데 머리로는 용서가 돼도 마음으로는 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저녁마다 한 시간씩 집을 나서는 시간부터 들어오는 시간까지 무엇을 했는지 취조를 했고, 다시 한 번 더 물어보며 앞에 이야기 했던 것과 차이가 있는지를 살폈다고 합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놓고, 그 만나기 하루 전 날 취소를 했다고 합니다. 너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 여자가 자신보다 눈이 크면 어쩌나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꿈을 꾸어도 그 눈 큰 여자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 이 자매가 남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가시가 돼서 누구든 그 근처로 왔다가는 상처를 입고 맙니다. 물론 열등감은,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자아존중감의 부족함에서 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 하나를 위해 죽으실 만큼 존귀한 존재임을 내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좋은 부대가 돼서 다른 사람들까지도 넉넉하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술이 새 것이면 부대도 새 것으로 바꾸어야합니다. 로마에서는 라틴어를 쓰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각자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미사 때 그 라틴어를 쓰지 않으면 왠지 전례가 변질되는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라틴어를 들으며 미사경문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미사 때 묵주를 돌리고 있는 것이 풍경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도 결국 거의 2000년 동안 담아야 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항상 같은 부대로 그것들을 담으려 해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새 시대에 새 부대가 필요하다는 동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결코 전례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고집하던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들과 같았던 것입니다. 라틴어가 좋다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식이 좋다고 모든 이에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의 문제는 결국 남이 아닌 자신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들부터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새 부대로 변하게 되어 유연하게 많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됩니다.

 

<더 리더>라는 영화에서 한 사춘기 아이는 한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며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8년 후 아이였던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었고 나치 전범들을 재판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때 만난 한나도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그 때 유태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지만, 다른 범인들은 이 모든 보고서를 써 올린 가장 큰 책임자가 한나라고 몰아세웁니다. 판사가 글씨체를 보기 위해 글을 써 보라고 하지만 문맹이었던 한나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이 만천하에 들어나는 것이 두려워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20년 형을 받게 됩니다.

20년 동안 마이클은 한나에게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감옥으로 보내줍니다. 그리고 이제는 중견 변호사가 된 마이클은 한나가 유태인 아이들을 교회에 가두어 모두가 타 죽게 만든 일을 뉘우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동안 감옥에서 뭘 깨우치셨는지 모르겠네요.”

한나가 대답합니다.

뭘 깨우쳤냐고? 글을 깨우쳤지.”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열등감이 너무 크게 자리 잡기 때문에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글을 깨우친 것이 중요하지 나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대입니다. 새 부대는 내가 지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만큼 유연해져 그만큼 새로운 것,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부대가 되어야 새로운 것들을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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