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3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8 조회수377 추천수2 반대(0)

서울대교구는 3곳의 순례길을 선포하였습니다. ‘말씀의 길, 일치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10일에는 한국의 주교님들께서 이 길을 순례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지내면서 순교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순교자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저는 가톨릭 용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란 죽은 자의 뒤를 이어 10일 이내에 따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순교란 자신이 신봉하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 바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에는 이를 치명(致命)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믿음, 즉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2세기 중엽부터 교회는 재판소에 끌려가서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를 증거자(證據者), 피로써 증언한 자를 증인(證人, Martyrs)이라 불렀는데, 이 후자의 경우를 순교자라 하였습니다. 순교자는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혈세(血洗)의 은혜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요한 15, 13).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들을 위해 위령 기도를 하기보다, 오히려 찬미의 기도를 바쳐야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사학죄인(邪學罪人, 천주학쟁이)이라 하여, 대역죄로 다스리는 바람에 2만 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6·25 때는 많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공산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은 103위의 영광스러운 순교 성인을 모시게 된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은 세상 사람들이 보면 어리석은 삶을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란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다가 박해를 받고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많은 기쁨과 영광을 얻지 못했지만 천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음을 우리는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공익광고가 있었습니다. 화재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다 순직한 소방관의 사진도 나왔습니다.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다리를 절단한 역장님의 사진도 나왔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숙자들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광고입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의 희생과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세상은 물질, 명예, 욕심, 권력이라는 것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 진정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양보, 희생, 인내, 겸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익광고에서 이야기 하듯이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이끌어가는 힘은 도덕적인 자질, 희생, 겸손, 인내와 같은 가치입니다. 능력만으로는 사회를 이끌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를 따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차는 우리를 편리하게 하는 운송수단이 되지만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이 잘못되면 차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흉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가 참으로 따라야 할 가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설 때 꼭 갖추어야 할 것들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것과 하느님이 것이 무엇인지를 식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참된 지혜는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십자가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십자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생각하였습니다. 1997년도 IMF 당시에 형은 사업에 실패를 하였고, 그 때부터 제가 부모님을 위한 집을 마련하고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십자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의 십자가에 비하면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고, 당연한 도리이며,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합니다.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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