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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집과 소신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8 조회수994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23주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 14,25-33

  

 

 

고집과 소신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큰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접하면서 위로와 평화, 구원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기대와는 다른 말씀을 접하면서 긴장할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누구든지 나에게 오려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시며 자기소유를 송두리째 버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아드님은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엉뚱한 말씀을 하시면 마음이 흔들리고 맙니다. 성당에 나가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영 딴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보장 받는다고 했는데 귀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고 약속에 충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 대한 신의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출가’ 라는 말을 씁니다. 속세의 가정을 떠나 승려가 되기 위해 불문에 드는 일을 말합니다. 뜻을 품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덕을 닦는 일을 들어 말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여 부모님 품을 떠나갈 때도 ‘출가’라는 말을 합니다. ‘출가’는 소위 가족과의 불화나 갈등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집에서 나가는 ‘가출’하고는 다릅니다. 출가는 단순히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착을 떠나는 것입니다.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소중한 하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것을 선택하였으면 거기에 투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가 있고 자녀가 따르기 때문에 이제 그에 대한 그만한 책임이 주어지게 마련입니다. 한 가정의 주체가 되었다면 이제 부모에게 기대거나 무엇을 바라지 말고 홀로 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뒷받침 해 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고와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칭 마마보이가 되어 성숙한 인격체로 설 수가 없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이제 놓아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켜보면서 남모르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사사건건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기대하면 실망이 커집니다. 내가 신경을 안 써 주면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온갖 일에 ‘간섭과 참견’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때가 되면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야 하고 또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또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출가의 의미를 새롭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길이 좋은 것임을 안다면 하느님의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흠숭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다른 사람들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선택하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큰 축복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다시 목숨을 얻는다”(요한10,17). 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도 어렵고 힘들더라도 지금 하느님을 선택하면 바로 그 선택을 통해서 다시 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첫째자리에 놓아야 할 것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세상을 놓고 결정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예수님이십니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복숭아 농사를 지면서 이른 봄에 가지치기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 적과를 하게 되는데 욕심이 생겨 하나라도 더 얻으려 그냥 모든 것을 방치한다면 그해의 수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깝게 생각되더라도 과감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뜻을 품었으면 그에 맞갖은 투신을 해야 합니다. 탑을 세우려면 공사를 잘 마칠 수 있을지 계산해 보고, 임금이 싸움을 해도 먼저 지금 군대의 수로 이길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고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그만한 준비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세상에는 약삭빠르게 계산하면서 왜 그 좋은 머리를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는 것에는 쓰지 않느냐? 는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만한 투신과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세상에 나왔으면 탯줄을 끊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끊어버리는 것은 마땅합니다.

 

따라서 천상을 위해서 유익하다면 나의 집착과 소유의 마음을 과감히 버리십시오. 죄악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생각과 시선을 거두어야 합니다. 자기의 못된 습성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사람을 소신 있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은 고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집, 그것도 그냥 고집이 아니라 똥고집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느님 앞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 앞에 쓸데없는 고집불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앞에 소신 있는 여러분의 믿음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언제어디서나 하느님께서 요구하는 것에 반대되는 것이면, 또 이쪽도 저쪽도 아닌 미지근한 것이면 단호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인 여러분, 하느님 앞에 적당한 타협이나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하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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