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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짜 수도자들과 가짜 사제들 [사랑을 미워하는 한 통속 제자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8 조회수478 추천수0 반대(0) 신고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르코 10, 28 참조) 하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립니다. 그러나 한가지 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여도 최후의 자기 자신마저 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까지 해당됩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자아>가 있다면 '그 자아'가 있기에 참으로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 조차도 마저 없어져야(버려야)만 참으로 버리는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자신을 버리고자>하는 <나 홀로 수덕주의자>가 많습니다.설령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여도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가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는다면 참으로 제 자신을 버리는게 아닙니다.

이런 착각으로 <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수도자,사제)을 많이 보았으며 앞으로 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까지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제 자신을 버리는 경지의 수덕에 이르기만 하면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버릴 수가 있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매입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가 여전히 제 자신이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미궁 속으로 자기를 빠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있는 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있는 나"를 주신 것입니다.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말씀이신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없는 나>가 아니라 <있는 나>이시다는 뜻입니다. 되돌아가서 재차 정리를 한다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여도 최후의 자기 자신마저도 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버린 것이 아닙니다.하지만 여기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는 '자기 버림'이란 <없는 나>가 아니고 <있는 나>를 내어 준다는 설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나 홀로 수덕주의>가 아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게 저의 강력한 메시지 전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리고 성체성사에서 <있는 나>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버리고자 하신 '나 홀로 수덕'를 완성하시고자 하신게 결코 아니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랑" (1요한 4, 7 참조)이신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

즉,<있는 나>를 내어주시는 사랑의 형태가 곧 하느님의 사랑의 형태이며 자신을 버린다는 '자기 버림'이란 '없는 나'가 아니라,사랑이신 '있는 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임을 깨닫고 어리석은 <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제 자신을 내어주면 참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버리게 됩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그 자아>마저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져서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참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홀로 수덕주의자들이 미궁 속에 빠진 <자기 버림의 득도>를 완성하시고자 십자가의 길을 걸어시지 않으셨습니다.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성체성사로 자신을 내어 주시고자 하신 사랑이셨다는 가르침을 잘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바로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십자가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는 <예수님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하셨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나 홀로 수덕주의자>들은 차라리 산 속의 절에서 득도를 하는게 낫습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등한시하면서 <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진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려서> <사랑에 완성한다>는 '자기 득도의 계산'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세인 것입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수석사제들,원로들 처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지 못하는>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할 것입니다.

<내 안에 내(자아)가 사는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가르침은 내 안에, 나는 작아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커지신다는 가르침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버려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나 홀로 수덕의 자기 득도>는 '하느님의 지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면 자신을 버리게 됩니다. 곧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된 모습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힘>이십니다. 자신을 버리고자 하는 '자기 득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으로 자신을 버리게 되는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은총의 힘이다는 점을 아는게 또한 '참된 신앙'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은 율법학자,바리사이들과 같지 않고, 수님처럼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한 순간도 등한시하지 않는,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는 것이며> 자기를 버리고 난 다음에서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힘>에 의탁하는게 아닙니다.

내 안에 자기는 작아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커지셔야 합니다.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등한시하는 영적인 나태인 자기 고집대로 '나 홀로 수덕주의'에 매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하여야 그리스도의 영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토 6, 17 참조) 먼저는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하고 나서야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가 되어집니다.그리스도의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등한시하는 가짜 제자들이 있기도 합니다.<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가짜 제자들, 가짜 수도자들과 가짜 사제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일 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우선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이 먼저인 것이 성경의 참 가르침입니다.자기 몸 안에 성령님, 그리스도의 영이 머무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결합하는 그리스도의 몸, 곧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탓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지 않고 내 안에 내(자기)가 여전히 사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버려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 해도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 없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사랑을 하지않더라도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을 하면 손가락질을 합니다. 여기서 손가락질이란 모멸,조롱,비아냥,모해 (채찍질)을 말합니다.사랑은  힘들며 고생하고 고난을 겪는 일입니다. 돈(금)의 힘과 불완전한 규정들과 방침들의 힘 그리고 거친 삯꾼들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채찍질)을 당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이같은 수난을 겪는 이유는 '그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이신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은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거친 삯꾼들과 한 통속이 된 종교 지도자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가짜 제자들은 사랑을 미워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예수님과 같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구원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일치하는 '그리스도적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채우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을(사랑의 참된 제자들을)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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