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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9월9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9 조회수56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9월9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루카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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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목적을 전제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서 상식적인 논리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목적에 모든 논리를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구실을 찾았으니 그들의 행동과 언어가 상식적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논리와 행동은 유치하고 치졸했다.
오늘 날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정쟁을 보더라도 하나같이 비상식적인 논리들을 들고나와
상식이라고 주장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 세상에는 늘 이처럼 유치하고 치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상식이라는 말에 대해 묵상해본다.
우리 모두는 상식적인 것을 좋아한다.
상식에 거슬리면 다수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상식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굳이 어느 누구의 설명을 듣거나 배우지 않아도,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지켜야 한다고 믿는 그 무엇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상식적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오늘 복음을 좀 더 깊게 묵상을 해보면 그렇게 자신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신다.
아픈 사람의 아픔을 덜어주어야 하는 것은 분명 상식이다.
하지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이라는 덫을 놓고 예수님을 쓰러뜨리려 한다.
어떻게 보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당시의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는 상식으로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진짜 중요한 상식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안식일이 왜 생겨났냐는 이유에 대한 상식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입장이나 목적에 맞추어 만든 거짓 상식을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상식적인 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철저하게 비상식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백 퍼센트 이기심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양심은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최소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분한다.
하지만 그 구분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벗어난 상식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반복적인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결국 상식과 비상식의 혼돈을 체험하게 된다.
무엇이 상식인지 무엇이 비상식인지 구별이 모호해진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의 상식이라는 잣대는 처음부터 상대적 기준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비상식적인 아픔을 반복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우리 삶의 태도를 올바르게 세워보았으면 한다.

우리의 상식은 복음적이어야 한다.
복음적인 눈이 결여된 상식은 우리를 빗나가게 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복음적 상식(Evangelical Common Sense)"
어쩌면 이 자리를 통해서 세상에 처음 나오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기운을 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적 상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려는 마음을 만들어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오래 전에 어딘가에 기고했던 글 중 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복음적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아마도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비록 슬픔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복음적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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