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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1 조회수1,059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k.6,20)
 
 
제1독서 콜로 3,1-11
복음 루카 6,20-26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사거리에서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제가 잠깐 딴 짓을 하느라고 신호 바뀐 것을 못 본 것입니다. 그래서 제 바로 뒤에 있는 차에서 경적을 울려줍니다. 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곧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약간 주춤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 앞으로 쌩 지나가는 차 한 대가 있었지요.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빠서 속도를 높여 사거리를 지나가는 차였습니다.

만약 제가 신호를 제대로 보고 길을 건넜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제 바로 뒤에 있었던 차의 경적소리를 듣고서 주춤하지 않고 곧바로 출발했어도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딱 1초의 시간입니다. ‘똑 딱’하는 시간으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서두르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쓸데없는 것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두 가지에 그다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소홀히 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이기적인 내 생각을 내세워서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강요를 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러한 모습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이 아닌 불행의 길로 갈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떠한 곳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어떤 이들이 행복하고, 또 어떤 이들이 불행한 지를 말씀하십니다. 우선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거꾸로 말씀하셔야 정답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손길을 따를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굶주리며 울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세상의 기준 속에서 풍요와 만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손길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 하느님이 배제된 쓸데없는 일에만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로 하느님 안에서만 있음을 오늘 분명히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대한 관심은 이제 버리고요.....

목에 걸린 말 한마디, 잘 다스리면 온종일 행복하고, 잘못 다스리면 온종일 불행하다. 지금 그대가 던지는 말은 결국 그대에게 돌아온다(허당당).


이스라엘의 행복선언 성당.

 
열려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이정하의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시절에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피카소는 자기의 일,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일에만은 언제나 열정적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자기 아내를 모델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매일 보는 아내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늘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고 합니다.

나무는 봄이 되면 꽃과 잎이 피고, 여름이면 그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그 잎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그저 앙상한 빈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무의 모습은 사계절 동안 볼 수 있는 겉모습이지만 결코 나무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겉모습이 아닌 다른 어떤 모습,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그 어떤 모습,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닌 그 너머의 다른 모습,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닌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 즉 세상의 볼 수 있는 눈, 그 열려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값어치를 우리는 깨달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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