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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새 인간- 2013.9.11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1 조회수61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9.11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콜로3,1-11 루카6,20-26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새 인간-

 

오늘은 여러 예화로 여유 있게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신문에서 읽은 기괴한 그림과 그 해설이 이채로웠습니다.

‘피테르 클레즈, 바니타스 정물화’(1630년)와 이에 대한 해설(유경화)입니다.

 

-해골(죽음과 부패의 상징), 시계(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절제의 상징),

꺼진 등잔과 촛불(시간의 필연적 경과, 죽음의 임박), 책(지식의 무용함)등이

단골 고객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띠는 모티브는 단연코 책과 해골이다.

죽음 앞에서는 지식과 지혜도 결코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사실은 사람들을 겁주려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설파한 것이 아니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현재를 살라고,

이 순간을 즐기라고 일갈하는 거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이가 ‘카르페 디엠’ 깨어 지금 여기 현재를 삽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살아야 할 ‘영원한 현재’의 하늘나라입니다.

어느 인문학자 (고미숙) 글의 결론입니다.

-그 운명과 맞장을 뜨려면,

무엇보다 제도와 서비스, 욕망과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의 자율성과 창조력을 길어 올려야 한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때 운명과 맞장을 뜰 수 있는,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과 창조력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은총도 선사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때 현세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요

땅에 있는 것들에 대한 올바른 활용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지 않아 현세적인 것들에 집착할 때 옛 인간의 특징 인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 분노, 격분, 악의, 중상, 수치스러운 말, 거짓 말 역시

뒤 따르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게 인간 괴물의 특징들입니다.

부단히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새 인간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하여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새 인간으로 평생 끊임없이 성장, 성숙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어제 다섯 가지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1.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떨어진 밤을 주우니

꼭 하늘로부터 떨어진 은총을 줍는 듯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아, 눈만 열리면 내 주변 곳곳에 널려 있는 은총의 열매들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2.활짝 벌어진 밤송이 안에 꽉 찬 밤알, 그대로 깨달음의 열매 같았습니다.

‘때가 되어 익어 활짝 열릴 때 빛나는 깨달음의 열매이겠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인고(忍苦)의 기다림 후 득도(得道)의 순간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3.수도원 정원의 잡초밭이 된 잔디밭을 짧게 깎아버리니 평화로운 초원이었습니다.

함께 살라고 공존 공생하라고 주어진 세상입니다.

새삼 공존의 평화, 다양성의 일치임을 깨닫습니다.

잔디만 남기고 나머지 풀들을 뽑아내려 하니 끊임없는 폭력의 행사입니다.

 

4.눈에 보이는 세상 희망들이 사라지니 이제 하느님만이 희망으로 남습니다.

하여 정주의 삶에 만족한 사막의 고승 수도승이었음을 깨닫습니다.

 

5.도대체 생각 없는 단조로운 반복의 삶이라면

오래 살고 적게 살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단한 깨달음을 통해 주님과 깊어지는 새 인간의 삶이 아니라면

삶은 참 허무하고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깨달음들 모두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때 오는 은총의 선물들입니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때 오늘 복음도 확연히 깨닫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역설적으로 결핍된 자들이 행복하다는 선언입니다.

결핍에서 위에 있는 것을 찾게 되고 이어 하느님께서 이 결핍을 채워주시니 행복입니다.

반면 현세적인 것들로 가득한 이들에게는 불행이 선언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땅에 있는 것으로 가득 채워졌으니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동력의 상실이니 바로 이게 불행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저주도 형벌의 선고도 아닌 주님의 탄식이자 경고입니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라는,

또 가난한 이들과 부와 양식을, 마음을 나누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찾는 우리 모두를

당신을 닮은 새 인간으로 창조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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