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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2 조회수1,13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Be merciful,
just as also your Father is merciful.

(Lk.6,36)
 
 
제1독서 콜로 3,12-17
복음 루카 6,27-39
 
소나무는 굉장히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토양과 바람, 온도, 습도 등의 조건만 잘 맞으면 5, 6층짜리 건물 높이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분에 심어진 분재 소나무를 보면 4~50년이 흘러도 그 키는 불과 2~30Cm를 넘지 않습니다.

분재 기술자들이 나무의 꼭대기 가지와 뿌리를 정기적으로 잘라내고, 나무를 매년 다른 화분에다 옮겨 심으며 뿌리가 안정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무의 잠재력을 재거해서 난쟁이 식물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길들여진 나무는 원래의 크기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재된 나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능력이 없어. 나는 배운 것이 없어. 나는 배경이 없어. 나는 가난해.” 하는 식으로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자기 자신의 꼭대기 가지와 뿌리를 계속 잘라내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우리를 길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기준을 따르게 함으로써 우리들을 더욱 더 쭉쭉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 방법은 이 세상의 룰과 많이 다르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 또 다른 룰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오히려 잘 해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갚아주지는 않지만, 더 크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세상이 갚아주는 것이 클까요? 주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클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께 길들여지기보다는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을 원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졌으면 좋겠죠? 남을 누르고 그 사람 위에 오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길들여지기를 원하는 우리입니다. 이 모습은 크고 기품이 있는 소나무가 아닌, 분재된 난쟁이 소나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쓸모없는 모습에 길들여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면서 크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나를 만드십시오. 그래야 주님께서 갚아주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제 발로 서라(칸트).


10월에 개관하는 한국가톨릭문화원아트센터.

 

 
목표 달성 100%

저는 야구 관람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제가 응원하는 팀도 있어서,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열심히 응원을 하지요. 그런데 어제 야구 결과를 보다가 우연히 타격 순위에 눈길이 가게 되었습니다. 글쎄 3할 대 타자가 생각보다 적은 것입니다. 프로야구 선수 중 타자가 300명이 넘습니다. 그 중에서 3할 대 타자가 딱 15명밖에 없네요. 이 15명은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아주 우수한 선수이고, 그 팀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선수입니다.

그렇다면 3할이라는 타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10번 중에서 3번 안타를 친 것입니다. 7번을 아웃 되어도 훌륭한 선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3번의 성공 그리고 7번의 실패이지만, 이들은 30%의 성공률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의 100% 성공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 자주 빠져도 다시 기회를 주시고, 어렵고 힘든 그 순간에 당신께서 함께 하시어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100%의 성공을 하지 못하고 ‘실패자’라면서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100% 성공하는 우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20% 이하의 성공을 거둔다 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며 사는 우리를 원하시며, 그러한 이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임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세상의 눈으로는 100% 성공이 아니지만, 주님의 눈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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