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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살해하다 [구원적인 사랑 밖에서]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2 조회수453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당을 장식할 때 고통 받는 형제를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그는 돌로 된 다른 성당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성전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오 복음 강해에서)

버려진 이들에게는 관심이 필요없습니다. 이것은 많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있는 생각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제 부모가 있는 아기(아이)들에게는 관심이 많지만 버려진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일부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참조 ; 부산 어린이집 방송을 상기)

버려진 이들은 반드시 위에서 처럼 한정되지 않고, 우리의 관심 밖으로 소외된 이들로 넓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온갖 규정들 아래에서 온갖 버려진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것은 버려진 이들이 겪고 있었던 고통받는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스토무스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다시 <집을 짓기 위해 고통받는 형제를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그는 돌로 된 다른 집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성전입니다>하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적의 가치와 수단의 가치가 뒤바뀌는 전도현상인 것입니다.

 

다음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입니다.[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하고 가르치십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성인께서 언급하신 '고통받는'것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연결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적인 사랑'을 알 수 있게 되어집니다. 교황님께서는 구원은 악으로부터 해방이다고 하시며,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지적해 주십니다. (참조 ; 교황님의 교서 - 구원에 이르는 고통)
 
악에 의한 고통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악으로부터 해방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하느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를 주심으로써,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하느님의 사랑)이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의하여 인간은 악의 고통에서 해방되어집니다. 그러나 교황님의 교서를 정독으로 읽어보지도 않는체 아예 치워버리는 악의 편에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도 합니다.
 
자기가 속한 집단(공동체)의 이득을 위한 '진실의 감춤'입니다. 옳지 못한 비밀이 점점 누적될수록 무엇이 진실인지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집을 짓기 위해 죄,악의 고통과 죽음의 진실이 점점 감추어지면,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진실(올바름)으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적인 사랑'이 소멸되어지는 죄스런 배경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집을 짓고 먹기 위한 뭇 규정들과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뭇 방침들을 만들어 내고 삯꾼이 없으면 버려진 이들을 돌볼 일들은 감히 하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면 버려진 이들에 대한, 악에 의해서 초래되는 고통과 죄에 의해서 초래되는 죽음을 멈추지 못한다 할 것입니다. 목적의 가치와 수단의 가치가 뒤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집단(공동체)의 이득'을 위한 사람들이 판을 칩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의 문제에는 무관심으로 등한시하고 집(밥)을 짓는데는 모든 혈안이 됩니다.그리하여 더욱 죄악의 고통과 죽음을 부르는 죄스런 배경이 뿌리깊게 깔리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구제는 있지만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은 집(밥)이 필요없다는 것인가 하고 여전히 악역을 제시하겠지만 인간 안에서 결코 집(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은 집을 짓기 위해 악에 의해서 '고통받는' 버려진 이들이 악으로부터 해방 됨을 더욱 중시하셨다는 '구원의 진실'이다 하겠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성인과 요한바오로2세교황님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돌도 된 성전보다 살로 된 성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하느님의 지혜(그리스도의 힘)을 무시하는 제자들은 '사랑의 힘'에는 무기력하여 점점 누적되는 거짓을 진실로 여겨지게 됩니다.
 
부모가 없어, 버려진 이들이 겪는 고통에 일치하는 제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사랑의 힘'에 결코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수석사제들과 원로들과 같이 돈과 삯꾼들의 지배를 받는 불완전한 규정들과 방침들에 자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점점 비밀로 감추어지지 않고, 누적되지도 않으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구제하는 집(밥)도 필요하지만 버려진 이들의 구원적인 사랑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율법주의자들은 사랑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 원수가 버려진 이들에게 악으로 고통을 계속 하며 그리고 누적되어져 감추어진 비밀의 죄에 의해서, 죽음이 초래되는 짓들을 계속 할 수 있으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에서 무기력해진 제자들은 죄,악의 고통과 죽음을 계속할 수 있도록 죄스런 배경을 용납하고 맙니다.
 
부모가 있는 아기(아이)에게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부산 어린이 집에서 처럼 '죄악스런 배경'을 부모들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그와같은 구조체제를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버려진 이들의 보호자이십니다. 예수님을 주셔서 <사랑의 힘으로> 버려진 이들을 보호하게 하심이 하느님의 의로움이십니다.
 
돈의 힘과 삯꾼의 힘을 위해서 온갖 규정들과 방침들을 정한 구조체제는 돈의 힘과 삯꾼의 힘으로 집을 짓기 위해 죄,악의 고통과 죽음의 진실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그것은 집단(공동체)로 들어오는 돈의 가치를 '구원적인 사랑'보다 중시하기 때문입니다.죄,악의 고통과 죽음의 진실이 비밀로 감추어지지 않으면, 돈과 삯꾼의 힘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어 '고통받는' 버려진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겪어시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할 때, 구원적인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예수님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무관심으로 등한시할 때는 구원적인 사랑이 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지 못함은 '사랑의 힘'에서 무기력한 탓입니다.
 
자신과 집단의 이득인 돈과 삯꾼의 구조를 위해서 죄,악을 합리화 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죄,악의 숨겨진 비밀을 위해 판단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 또한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시야에서 다르다 하면서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 만드는 '거짓된 사랑'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살인'으로 비유하여) 감추는 살인자는 마땅하게 법의 심판을 받습니다.법의 심판이 없다면 여전히 살인자는 살인을(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인간 사회 안에서 저지르기 마련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적 사랑의 노고(제 십자가)>를 피하고자 거친(악한) 삯꾼들을 유지하는 공동체는 죄,악스런 배경은 남겠지만 '구원적인 사랑'은 지워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인 '하느님의 법'이 없는 불법이 성하여 사랑은 식어가게 됩니다.(마태24, 12 참조) 예수님의 가짜 제자들(수도자,사제)들은 사랑의 법(하느님의 법) 보다 자기와 집단의법들(규정들과 방침들)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돈의 힘과 삯꾼의 힘이 그 제자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사랑의 힘(사랑의 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글들은 '죄인'이 아니라, '죄스런 배경' 대하여 말합니다. 사랑의 법을 어기고 사랑의 힘을 무기력하게 하는 죄악스런 배경(악한 것들을 서로 공유)에 대하여 말함입니다. 죄악스런 배경 위에서는 돈이 계속해서 많이 들어와야 하고, 돌보는 일들을 삯꾼들이 하면 제자들은 많이 편안해 질 수 있습니다. 이로써 사랑의 힘이 무기력해 집니다.
 
이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사제들은 집단(공동체)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고 수도자들은 살인(죄,악의 고통과 죽음)을 감추어야 합니다.그래야만 성전(집)에 돈이 많이 들어오고, 삯꾼들은 계속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을 살해한 살인자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죄스런 배경에서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것은 죄인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그러한 죄,악을 일으키게 하는 죄,악스런 배경에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멈추게 하는 참된 사제들과 참된 수도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제자들은 구원을 위한 죄,악스런 배경을 정화시키는 '그리스도의 힘'을 지니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라고 하여도 모든 인간을 구원해 내는 '구원적인 사랑의 힘'을 그리스도에게서 받음으로써 버려진 이들은 물론 악인과 죄인들 모두를, 예수님의 구원적인 사랑 안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가짜 제자들에게는 죄,악스런 배경을 형성시킴으로써 '구원적인 사랑의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구원적인 사랑 밖에서 - 죄,악스럽도록 만듭니다.
 
 
 
<참고>
여기서는 버려진 '아기'에 관련한 글이지만
아기는 물론이며 버려진 어른과 노약자에게도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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