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티롤 지방의 작은 마을인 라텐베르크(Rattenberg)에서
가난한 직공의 딸로 태어난 성녀 노트부르가는
어릴 때부터 그 지방의 백작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였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녀는 가끔씩 음식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주인에게 들켜 쫓겨났다.
그 후 그녀는 에벤(Eben)의 어느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계속하여 선행을 베풀었는데,
자신은 거의 굶다시피 했던 것이다.
![](http://info.catholic.or.kr/pds/include/readImg.asp?gubun=&seq=&id=32919&filenm=%C6%BC%B7%D1%C0%C7%BC%BA%B3%E0%B3%EB%C6%AE%BA%CE%B8%A3%B0%A130%2Ejpg&maingroup=)
이러한 그녀의 소문이 널리 퍼지자 백작 부인은 그녀를 다시 불러 들였다.
여생을 하녀로서 지내다가 1313년 9월 14일에 세상을 떠난
성녀 노트부르가는 하녀들의 수호성인으로
그녀의 유해는 에벤에 있는 성 루페르투스(Rupertus)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62년 3월 27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허용되었다. 그녀의 상징은 낫이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