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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3 조회수971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Can a blind person guide a blind person?
Will not both fall into a pit?
(Lk.6,39)
 
제1독서 1티모 1,1-2.12-14
복음 루카 6,39-42
 
어떤 화가가 있었는데 그는 돈도 없으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늘 부자인 척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화가가 엄청난 부자인 줄 알았지요. 그리고 그러한 소문을 듣고 도둑이 어느 날 밤 몰래 이 화가의 집을 침입했습니다. 하지만 부자라는 소문에 비해 집에는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 집을 털기 위해 애썼던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는 생각에, 도둑은 화를 내며 화가에게 말합니다.

“그림이 그렇게 잘 팔려서 돈이 많다고 큰 소리 치더니 알고 보니 거지 중에 상거지구만!”

그러자 화가가 도독에게 이렇게 사정합니다.

“평소에는 돈이 많이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 공교롭게도 돈을 벌지 못했네. 미안하지만 오늘 본 일을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게.” 그러면서 자신의 주머니를 툭툭 털어 그나마 남아 있는 잔돈까지 모두 도둑에게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냥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네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싸구려 자존심이 강한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싸구려 자존심이 중요할까요? 사실 우리는 자신의 체면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이 체면은 약간의 시간만 지나도 별 것 아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우리의 내면이 아름답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굳은 마음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겉으로만 행복한 척 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눈 뜬 장님과 같습니다. 마음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볼 수도 없고 또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고, 판단하며 단죄합니다. 그 결과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위선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따라서 위선자의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닌, 보이지 않는 내 내면을 더욱 더 튼튼하고 아름답게 만드십시오. 나의 내면이 이렇게 튼튼하고 아름다울수록 남의 이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도 저절로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 위선자의 삶이 아닌,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따를 수 있는 아름답고 튼튼한 마음을 가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그 길이 내 곁에서 그리 멀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계로 받아들인 것은 가슴 아픈 일이 되고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골치 아픈 것이 된다.(김용신)


군인신학생 피정에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저녁 아가페시간의 모습.

 
내 내면에 울리는 주님 목소리 듣기

보지도 듣지도 또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발명왕 에디슨을 만났을 때 수화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만약에 제가 선생님 같은 위대한 발명가라면, 전 세계의 청각장애인이 잘 들을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고개를 저으며 그러한 기계는 필요 없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좋은 말보다는 남의 허물이나 약점,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말이라면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에디슨은 바로 겉으로 들리는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요? 나의 내면에 울리는 주님의 목소리, 특히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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