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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카인 콤플렉스 극복하는 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4 조회수74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24주일


<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복음: 루카 15,1-32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카인 콤플렉스 극복하는 법 >

         

오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그리스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하늘의 천사들도 기뻐하는데 너희들은 왜 기뻐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도 말씀하십니다. 탕자인 동생이 돌아왔을 때 그 동생을 받아들여주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형의 모습이 곧 그들의 모습이란 것입니다. 자신이 당연히 더 사랑받아야 하는데 그 사랑을 못마땅하게 빼앗겨버렸다고 느끼고 그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느끼는 동시에 동생까지 미워하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카인 콤플렉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잔뜩 받고 싶어 했던 카인이지만 아벨만 좋아하는 하느님도 싫고 동생도 싫어서 동생을 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 박사이자 의사인 이무석씨가 자신의 책 ‘30년만의 휴식에서 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라는 잘 나가는 중견 기업 이사를 카인 콤플렉스의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휴는 잘 나가는 30대 후반 직장인입니다. 직장에서 최연소 이사까지 급성장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그는 초... 또 대학에서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대기업에 특채로 뽑혀 들어간 인재입니다. 그를 잘 보았던 그의 선배가 회사를 새로 차리면서 그도 스카우트했고 그의 능력덕분으로 회사가 크게 성장했고 최연소 이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장이 휴에게 사표를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휴는 그동안 내가 사장과 회사를 위해서 희생한 게 어딘데...’하며 분노를 터뜨리고 그러면서 원인모를 설사병에 시달려 5킬로가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무석 교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한 이유는 그가 무척이나 경쟁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능력으로 평가했고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심하게 다그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들어온 인재들이 휴와는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나 둘씩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사장이 가장 신임하는 후배도 떠나겠다고 하니, 사장은 그 후배를 택하고 골칫거리가 돼 버린 휴를 내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담을 하던 중 이무석 교수의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당분간 휴를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수에게서마저 버려졌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고 꿈에서마저 교수가 탄 배가 난파되어 그가 죽는 잔인한 꿈을 자주 꾸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걱정이 되어 생사확인을 위해 전화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죽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휴는 그러는 중에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를 자신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휴는 어렸을 때부터 태어나지 못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형 하나만 키우면 되니 뱃 속에 있는 휴를 지우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몰래 피해있다시피 하여 간신히 세상에 태어난 휴는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어디 놀러가거나 출장을 갈 때도 형만 데려갔습니다. 휴는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든 면에서 형을 앞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잘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형만 사랑하는 아버지가 미워 배가 뒤집혀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형은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여 이민 가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형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휴는 자신이 사귀던 여자를 떠나 아버지가 정해주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물론 싫지 않으니까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증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굳이 인정받을 필요도 없지만 어렸을 때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 때문에 누군가를 계속 아버지로 투사하며 인정받기 위해 무한경쟁과 질투 속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사장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사장으로부터 가장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 했고, 이무석 박사 또한 아버지로 투사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목마름. 나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외적인 것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드러내려 하지만 사람의 존엄성은 존재자체지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옆집 아이가 더 공부를 잘 한다고 내 아이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끊임없는 카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질투하고 경쟁하며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역시 자신들의 드러나는 행위와 지식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세리와 죄인들을 그들보다 더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탕자들을 질투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이들을 보면서 천사들도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마귀들은 기뻐하지 않고 질투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이 자신보다 아벨을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천사이고, 질투한다면 마귀인 것입니다. 실상 마귀는 처음엔 천사였으나 죄인인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신들보다 더 높아지는 것을 보고는 질투하여 하느님의 집을 뛰쳐나온 탕자의 형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카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질투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요? 누군가로부터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임을 가슴깊이 느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빛은 마치 드라큘라가 빛을 보면 재가 되어버리듯이 내 콤플렉스를 한 순간에 녹여내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만족하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번 SBS 힐링캠프에서 차 사고로 몸 55%3도 화상을 입고도 살아나 얼굴과 온 몸이 성치 못함에도 지금이 행복해서 과거의 예쁜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당당하고 유머도 있는 이지선씨가 나왔습니다.

이지선씨는 대학교 4학년 때 오빠와 차를 타고 신호대기를 하던 중 뒤에서 음주뺑소니 차량에 사고를 당해 온 몸에 화상을 입었고 의사도 포기한 상태였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로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매일 온 몸을 소독해야 했는데 진통제의 효과가 떨어지는 몇 시간 동안은 극도의 고통을 당해야 했고, 살이 오그라들어 눈과 입을 몇 달 동안 깜빡이거나 다물 수 없었으며, 목의 살이 오그라들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어서 목과 척추까지 휘어져야 했는데, 더 힘든 것은 손가락이 곪아 8개를 잘라내어야 했습니다.

40번 가량 수술을 하면서 절망에도 빠졌었지만, CD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과거의 예쁜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고통 속에서 찾아낸 보석이 너무 아름다워 잃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찾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사고를 낸 사람의 차가 보험에 들어 있어서 감사했고, 몇 달 만에 눈을 깜빡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감사했고,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숟가락을 들 수 있는 것에 감사했으며, 환자복의 단추를 혼자 힘으로 끼울 수 있어서 감사했고, 문을 열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합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서부터 감사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은 기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하느님은 이지선씨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아!”

이것이 내 모든 것을 녹여내는 빛인 것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어떤 남자는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가 느끼고 싶은 것은 우리가 소중하다는 것 하나 뿐입니다. 사실 나를 소중하게 느끼게 하지 못하는 추한 것들이 내 안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모습의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 못난 이 모습이 사랑스러워 돌아가시고 지금도 당신 몸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이 사랑하시는데 내가 부끄러워하고 남을 질투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는 순간은 내 사랑하는 아들아(딸아)!”하는 엄청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성체만큼 우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온 존재를 통해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구원받게 된다면 이제 천사처럼 다른 이들이 잘 될 때 질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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