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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사람(眞人)’이 되는 공부 - 2013.9.15 연중 제24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5 조회수37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9.15 연중 제24주일, 탈출32,7-11.13-14 1티모1,12-17 루카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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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眞人)’이 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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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람이 되는 것만큼 중요하고 힘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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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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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종종 인용하는,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어느 수녀님의 말도 잊지 못합니다.

한 번 뿐이 없는 유일무이한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는 공부만큼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평생공부가 사람이 되는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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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되는 공부 소홀하면

탐욕과 본능만의 동물이 될 수 있고 사악한 괴물도 될 수 있습니다.

평생 공부해야 말 그대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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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선 실록을 틈틈이 보면서 인간 본질은 그대로임을 깨닫습니다.

권력욕, 물욕의 탐욕이 발동되면 그대로 괴물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부자간도, 형제간도, 친척간도 없습니다.

사람 목숨을 어쩌면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는지요.

역사 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무고하게 고문당하고 죽어갔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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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요즘 좌우의 이념 대립이 또 막강한 우상이 되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보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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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나라에 사형집행이 없어졌고 고문이 없어졌다는 것 역시

얼마나 큰 진보인지요.

많이 부족하기 합니다만 민주주의의 원리가 작동하여

모든 국민이 투표로 대표를 뽑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진보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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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에게 여전히 위력을 발하는 권력욕, 물욕 등 탐욕과 이념의 우상들입니다.

늘 깨어 주님과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우상에 종속되어 괴물이 될 수 있는 인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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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이제나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로 변질됐나 하지만

알고 보면 잔인성, 폭력성, 공격성의 본질이 들어난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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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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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을 떠나 방황이요 탐욕의 노예 되어 괴물로의 전락입니다.

하느님을 떠나선 참 사람이 되는 길도 요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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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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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참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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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학자 장대익은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 준 것들’이란 책에서

‘탐구하는 인간’을 첫째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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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해야 할 궁극의 대상은 바로 하느님임을 은연중 암시합니다.

다 찾았어도 하느님 찾지 못하면 다 무익하고 헛될 뿐입니다.

우리의 평생과제가 바로 이런 자비하신 아버지를 찾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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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은 우리 역사의 삶의 중심이심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런 중심의 하느님을 잊어 어둠 중의 혼란이요 방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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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탈출기에서 모세의 간청을 받아드려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 던 재앙을 거두시는 하느님의 모습에서도

그분의 자비가 희미하게 계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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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로 환히 계시됩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는 하느님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는 하느님의 천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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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란 말마디가 중요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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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돌아 온 작은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큰 아들을 다독이며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은 결정적으로 계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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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 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 살아났고 내가 다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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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게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큰 아들을 달래는 무능할 정도로 사랑의 전능을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모습,

바로 이게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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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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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편협하고 옹졸한 마음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대자대비의 하느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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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에서 이런 자비하신 아버지를 만난 바오로 역시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두 번이나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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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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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참 사람입니다.

죽으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도 못 드립니다.

살아있을 때, 젊었을 때, 건강할 때 많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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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라고 주어진 인생입니다.

사랑은 저절로 표현을 찾습니다.

바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찬미와 감사의 고백이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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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사랑에서 샘솟는 찬미와 감사요,

찬미와 감사에서 풍요로워지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여 수도자들은 물론 깨어있는 신자들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성무일도를 드립니다.

오늘 주일 새벽 성무일도의 감동이 새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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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에 이어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 목장의 양 떼이로세, 어서와 조배드리세.”

초대송 후렴을 힘차게 노래했고, 이어 아침기도 세 후렴도 참 은혜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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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감사하라.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께서 지어낸 만물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하여

우리 그리스도교를 찬미의 종교라 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찬미의 사람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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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만납니다.

하여 위로와 평화에 치유입니다.

마성이나 악성은 정화되고 성화되어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아 참 사람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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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참 사람이 모델이

1독서의 주인공 모세, 2독서의 주인공 바오로,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입니다.

세 분 다 하느님을 만나 참 사람이 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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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아녔더라면

우리는 이렇게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주님의 기도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참 사람’이 된 바오로의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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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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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바치는 끊임없는 알렐루야와 아멘 찬미와 감사의 고백이

바오로와 같은 참 사람으로 우리를 변모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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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회개하여 존엄한 인간 품위를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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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참 사람입니다.

품격, 기품, 품위가 있어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모세 바오로의 참 사람 모델과 극명하게 대비 되는

오늘 복음의 함량미달의 두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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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바로 회개해야 할 우리 모든 인간을 상징합니다.

어찌 보면 두 아들은 우리의 양면성일수도 있습니다.

아니 두 아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자 그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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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시함이 중요합니다.

둘 다 자비로운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데는 실격했습니다.

복음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외 아드님 예수님만이 합격입니다.

몸은 자비하신 아버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마음은 아주 멀리 있었던

회개가 필요 없던 의인(?), 아니 진정 회개가 필요한 죄인 큰 아들이었고,

몸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회개하여 자비하신 아버지 가까이 있었던 작은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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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회개를 통해,

자비하신 아버지께 돌아감으로 존엄한 품위의 회복이요 참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곤궁 중에 돼지를 치다가 제정신이 든 작은 아들의 독백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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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그 많은 일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해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써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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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자비하신 아버지를 깨달아 발견한 작은 아들입니다.

바로 이게 회개의 구원이요 저절로 뒤따르는 품위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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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작은 아들은 행복했습니다.

돌아갈 아버지가, 아버지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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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의 처지는

바로 하느님을 잊고 곤궁 중에 허덕이는 사람들 모두를 상징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몰라서, 또 냉담으로, 또 세상 쾌락에 중독되어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의 아들로서 존엄한 품위를 잃고 세상의 종이 되어

비루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작은 아들 같은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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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가 절실한 작은 아들 같은 우리들입니다.

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회개가 아니라

끊임없는 평생회개의 여정을 통해 참 사람이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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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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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느님을 찾고 사랑하십시오.

2.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3.회개하고 존엄한 인간 품위를 회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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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존엄한 품위의 참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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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 온 작은 아들 같은 우리 모두에게

성대한 미사잔치를 베풀어 존엄한 인간 품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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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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