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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 대 믿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8 조회수63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복음: 루카 7,31-35






성모자


오라지오 겐틸레스키 작, 로마 국립미술관


     < 믿음 대 믿음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의 저자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믿게 되고, 믿는 대로 되어간다라고 말하며 재미있는 실험결과를 제시합니다.

 

1990년경 에렌 랭거(Ellen Langer) 박사는 70대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1959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30년 전인 1959년에 유행하던 옷을 입었고, 당시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또 그 때의 신문과 잡지를 보았으며 그 당시에 사는 것처럼 대화를 했습니다. 몸과 정신이 그 당시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박사는 그들에게서 노화와 더불어 퇴화되는 증상들을 측정해보았습니다. 측정의 기준은 근력, 인식력, 지각력, 미각, 청각 등이었습니다. 그러한 증상들은 노인병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생물학적 지표들입니다. 닷새 동안 그러한 생활을 끝낸 후 실험에 참가한 노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개선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5년 정도는 젊어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청력과 기억력도 개선되었습니다.

랭거 박사는 노화는 어쩔 수 없이 늙어간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따라서 이렇듯 편협한 정신자세를 떨쳐낼 수만 있다면 노년을 보다 젊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참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2000, 66)

 

저도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충격이었는지, 배가 아프면 위암이 걸렸다고 했고 머리가 아프면 그 어려운 단어인 뇌종양을 찾아내어 그것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상하게 그 두려운 것이 나에게 벌어질 것만 같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멈추지 못했다면 정말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에게는 가끔 가상임신이란 것이 일어납니다. 아기를 갖기를 너무 바라면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배가 커지고 가슴도 부풀어 오르는 등 아기를 가진 것과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곧 믿음이 되고 모든 것은 믿는 대로 변하게 됩니다.

EBS 한 다큐 실험에서, 우유 시음회에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몇 명이 우유가 상한 것처럼 이상한 반응을 보이도록 시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이 어떠한 반응을 하는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연기자들이 우유를 마시다가 토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니 시음회에 참가한 이들도 우유가 비려서 못 마시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한 명은 정말 식중독에 걸려 입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우유는 매우 신선한 우유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정보들을 육체로 인지하고 머리로 분석하여 마음에 쌓아놓습니다. 마음에서는 이것이 무의식적인 믿음이 되어 다시 생각에 영향을 주고 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의식의학 분야의 권위자인 대팩 초프라(Deepak Chopra)박사는 덮개가 달린 병 속에 든 파리를 예로 들었습니다. 덮개가 달린 병 속에 들어 있던 파리는 덮개를 열어주더라도 몇몇 용감한 놈을 제외하고는 병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병이 영향을 주었지만, 이제는 병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인 무의식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증거도 있습니다. 두 부류의 물고기를 칸막이로 구분된 수족관에서 일정시간 키우면, 칸막이를 없앤 후에도 물고기들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참조: 같은 책 65)

 

문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믿게 된 것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병이 걸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 일상에서 항상 무기력하게 지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정적인 믿음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자신은 눈이 작아서 남편이 눈 큰 여자를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은, 자신은 있는 모습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 남편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을만하다고 믿어야 변화됩니다. , 믿음은 믿음으로서만 치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믿음들을 긍정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피리를 불고 곡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리를 불어주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어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자기 정당화만 합니다. 요한은 먹고 마시지 않으니까 마귀가 들렸다 하고, 예수님은 먹고 마시니까 먹보요 술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칸막이가 없는 데도 가지 않는 자신의 모습, 뚜껑이 열렸는데도 병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내 무의식에 있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새로운 믿음으로 바꾸는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참다운 지혜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옳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어 내 안에 있는 헛된 두려움과 믿음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많은 예들이 존재합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의 모든 자녀들이 드러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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