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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현대의 순교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0 조회수691 추천수9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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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  9,23-26

 

 

 

현대의 순교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1요한4,10-12).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그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는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고 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의 씨앗인 순교자들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았습니다.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고 지금 삶의 자리에서 순교의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순교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는 무수한 순교자들이 등장하는 데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믿음의 가르침을 사랑으로 실천하였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이 현재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극복케 하였습니다.

 

1독서의 말씀 그대로 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3,9). 그들은 온전히 주님을 의지했고 사랑 안에 살고 은총과 자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 받습니다’라는 성경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8,35-37).고 한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몸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순교자들의 공통마음입니다.

 

천주교는 초기에 사교, 곧 사회에 해를 끼치는 못된 종교로 단정 되었고 이 사교를 뿌리 뽑는 것이 나라의 정책이었기 때문에 천주교와 관계를 맺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받아들였고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성사를 본다든지,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박해를 피해 깊은 산골로 가서 교우촌을 형성하며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고 추호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위로하며 사랑과 인내로써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기에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며 오늘을 살았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5-6). 옛 말에도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을 생각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지혜3,1-5).

 

우리도 고통 속에 하느님의 축복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 하며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서로 도웁시다. 몸은 비록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하며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 영생이라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김성우 안또니오는 박해 속에서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오.”하면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순이 누갈다는 옥중수기에서“앉거나 눕거나 구하는 바는 오직 치명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순교성인 중 가장 나이 어렸던 유대철 성인은 1814년 기해박해 당시에 스스로 포도청에 찾아가 천주굣ㄴ자라고 밝혔고 옥리들이 담뱃대를 불에 달구어 쇠끝으로 그의 살을 지졌지만 태연자약하게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로부터 1866년 한불 수호조약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자수가 늘어갔습니다. 그것은 감옥에 갇히고 처형당하면서도 하느님을 찬양하며 평화롭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배교를 강요당하면서도 그들은 결코 타협하지 않고 영생을 그리며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성경도 있고, 성직자도 많고 신앙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타협도 합니다. 신자나 비신자나 구별이 없습니다.‘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 뭐!’, ‘나만 이러면 손해 보는데?’,‘바보소리 듣는데’하면서 합리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이권과, 재물과 명예와 위신, 체면, 심지어 취미생활과도 타협한다면 그 안에 주님의 모습은 자리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의 모습 안에 주님이 비쳐지지 않으니 어떻게 신자가 늘어나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가9,23-24)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것은 힘들게 고생하며 따라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순간마다 자신의 뜻을 비우면서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타협하고 싶은 마음들이 십자가 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하느님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은총과 자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지혜3,9).

 

선조들은 피의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하고 지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들이 물려주신 신앙을 땀의 순교로 지켜야 할 때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분명히 ‘예’할 것은‘예’하고,‘아니오’할 것은‘아니오’하면서 주님을 과감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자, 제가 한마디 하면 그래도 사랑하여라 하고 답하십시오.

 

그가 원수 같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가 나를 욕하고 다닌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를 만나기만 하면 상처 받는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가 말을 함부로 한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가 너무 이기적이고 안보면 편하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를 보면 정말 밥맛이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그를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랑하여라.

 

정말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사랑하십시오.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어쩌면 그 날이 안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 안에 하느님을 담고 있기에 하느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으로 내 의지를 접고, 내 생각을 죽이고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입으로, 주님의 손발로 움직인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순교입니다. 사랑의 순교입니다.

 

성 알퐁소는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도 “만일 어떤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자기 의지를 희생으로 바쳤다면 그 사람을 감히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사랑의 순교자가 되십시오. 일상의 삶의 온전한 봉헌을 통해 땀의 순교자가 되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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