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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0 조회수743 추천수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20일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 대축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Lk.9,23)
 
제1독서 지혜 3,1-9
제2독서 로마 8,31ㄴ-39
복음 루카 9,23-26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IT 업계에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인 스티븐 잡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IT 업계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켜 성공가도를 달렸던 기업가이지요. 이러한 그가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러한 축사를 남겼습니다.

“열일곱 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지요. 지금 어떠한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순간의 부끄러움, 외적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들, 나의 이기심과 욕심들, 실패와 좌절들……. 이 모든 것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는 순간,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죽음 자체를 혐오해서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아직 오지 않은 것,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치부하며 눈앞에 닥친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선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살라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바른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한국의 모든 순교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을 주님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에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질문의 답으로 주님 사랑하는 것이 최고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과연 주님 사랑을 가장 첫째 자리에 두고 있을까요? 혹시 세상의 것들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주님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우리 순교 성인들의 삶을 기억하면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님께 청하도록 합시다.

이 세상에 가치관이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가장 친밀해지는 경우는 모든 생각이 전혀 다른 가운데 딱 한 가지 생각이 서로 통할 때입니다(니카타니 아키히로).


한가위 보름달

 
희망을 포기하지 맙시다.

어느 가정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에 대한 가족들의 충격은 대단했지요. 그리고 이 가족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심지어 명절날에 모여도 말이지요. 자신들의 마음속에 담고 있는 고통의 상처를 가족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지요.

만약 이 가족에게 있어 아버지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었다면 아마도 가족이 모였을 때 아버지와의 추억을 계속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죽음이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기에 잊으려고만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렇게 자기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타인에게 때로는 더 큰 아픔과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이지요. 자살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절망은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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