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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는 내가 하는 일이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0 조회수745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복음: 마태오 9,9-13






마태오를 부르심


카라바죠 작, (1599-1600), 로마 콘타렐리 경당

 


     < 나는 내가 하는 일이다 >

            

이무석 교수의 환자 중 육군 소령이 한 명 있는데 그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데, 주로 까치와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까치만이 자기 마음을 알아준다고 감격해서 대화하다 흐느껴 울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하며 이런 예를 들어줍니다.

 

1쯤 돼 보이는 소녀가 시내버스에서 껌을 팔고 있었다.

저는 병든 어머니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껌을 팔고 있습니다. 한 통에 300원입니다. 한 통씩만 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늘 볼 수 있는, 동정심을 이용해 이익을 남기는 껌팔이 소녀였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한 신사가 소녀에게 1000원짜리를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700원을 거슬러 주었다. 신사는 돈을 거슬러 주는 것을 보니 정직하구나. 나머지는 너 가져라.”했다. 그러나 소녀는 그 돈을 거절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버스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껌을 사겠다고 소녀를 불렀다. 껌은 순식간에 다 팔렸다.

[발췌: 이무석, 30년 만의 휴식, 181-2]

 

얼마 전에 저를 두고 한 말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로부터 일 중독이란 단어를 들었습니다. 뭐 일 중독이 될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지도 않지만, 왠지 일만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에 조금 뜨끔했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랜(?)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싶다고 할 때 상상했던 것은 물론 본당신부였습니다. 그 욕구가 극도에 달했을 때는 보좌신부 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본당신부가 되기 직전 유학을 나가게 되어서 첫 해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신자들이 그리웠고 신자들의 사랑도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책하고 씨름을 해야 하고 벽을 보고 미사를 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많이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지쳐 있을 때는 귀가 안 들린다는 핑계로 3달 동안 한국에 들어와 신자들과의 접촉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힘이 다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제로 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미사하고 고해성사 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까치와 이야기한다면 - 물론 인간의 존엄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 온전한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 시내버스에서 껌을 팔다가 남의 돈을 거저 받게 되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장사를 하는 보통 사람이 아닌, 그저 구걸하는 거지의 신분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이 사람을 온전히 말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일을 빼놓고는 온전히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신학은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하는 일과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구원자이시고,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을 위해 가르치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행위를 하지 않으셨다면 더 이상 예수님은 예수님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바로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나라를 팔아먹는 인간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또 그 사람을 당신 제다로 뽑는 것 자체가 예수님께는 대단한 약점을 지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를 세리에서 교회의 기둥으로 부르십니다. 사실 마태오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삶을 바꾼 이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어부였고, 어떤 이는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물고기를 낚는가, 혹은 사람을 낚는가는 정말 큰 차이입니다. 그 일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도 그렇게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오를 통해서도 교회의 기초는 이렇게 당신 때문에 하는 일을 바꾼 이들이었음을 보여주십니다.

 

여자로서 죄인이었다가 첫 째가 된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다면 남자로서는 마태오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분들이 희망을 주어, 아우구스티누스나 프란치스코와 같은 성인들이 나오실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 일을 하고 있는 나가 바로 지금 나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럼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물고기만 잡았다면, 마태오가 돈만 만졌다면 하늘나라에서 사도좌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매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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