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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르심에 대한 묵상 - 2013.9.21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1 조회수432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3.9.21 토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4,1-7.11-13 마태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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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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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르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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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이어 수도성소를 통해 수도자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은 순전히 신비이자 은총입니다.

부르심의 주도권은 온전히 하느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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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라는 사람을 보시고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일어나 예수를 따라 갔도다’(마태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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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서두이자 아침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입니다.

왜 마태오를 부르셨는지 주님만이 아시는 부르심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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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닌 주님의 은총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아 알 때 저절로 겸손과 감사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으로 세리에서 사도로 업그레이드되어 운명이 바뀐 마태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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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림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주 인용하는 어느 유대인 랍비의 언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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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림을 받았기에 마태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림을 받지 않았더라면

마태오나 우리의 처지는 무명(無名)의 존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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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는 인간(Homo scientificus)입니다.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또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찾는 마태오의 갈망을 헤아렸고 즉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순간순간 죽을 때까지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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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주님은 우리를 ‘하나’에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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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가 명쾌하게 밝힙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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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로 불림을 깨달았을 때

하나이신 주님 안에서 내외적 일치로 평화와 안정의 삶입니다.

단순하고 순수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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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님은 우리를 ‘공동체’에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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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를 불러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에 합류시킨 주님은

우리를 교회공동체로 또 수도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바오로 역시

공동체 내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 위한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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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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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사도, 예언자, 복음 선포자, 목자, 교사 등

다양성의 일치를 이루는 교회공동체이듯 우리 수도공동체나 가정공동체의

구성원들 역시 저마다의 소임이 있어 다양성의 일치를 이룹니다.

하여 우리들이 받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더불어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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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주님은 우리를 ‘성숙한 사람’이 되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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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성장과 각자의 내적성장은 함께 갑니다.

공동체 없이 개인의 내적성장은 불가능합니다.

도저히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각자 주님께 받은 소임에 충실함으로 제 십자가를 잘 지고 갈 때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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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주님은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 공감의 사람’이 되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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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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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사람은 연민의 사람이며 공감과 배려의 사람입니다.

공감하는 사람(Homo empathicus)은

과학이 말하는 인간의 두 번째 특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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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구의 생명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의 응징 능력이 아닌 공감과 배려 덕분이라 합니다.

자연계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이요

그 가운데 예수님은 공감능력의 절정을 사신 분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갈 때 우리의 공감능력도 끊임없이 향상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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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감지수가 100%라면 우리의 공감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진정 위대한 사람은 공감지수가 높은 자비의 사람이요,

이런 자비의 사람이 되라고 불림 받은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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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성소를 새롭게 하시며 각자 부르심에 충실히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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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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