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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기 아끼지 않기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1 조회수64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복음: 루카 9,23-26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자기 아끼지 않기 >

                

제가 초등학교 때 복사서기 위해 옆집 친구와 함께(그 친구도 사제가 되었습니다) 매일 1시간씩 시골길을 걸어 성당에 오가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하는 순교자 노래였습니다. 특히 새벽이나 밤 어두울 때 무서움을 쫓는 데는 순교자 성가만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수녀님이 신앙인의 목표는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 본 순교자들의 잔혹한 고문이 그려진 그림들이 어린 나이에 머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양쪽에서 밧줄로 서로 당기면서 몸을 자르는 장면이나, 시뻘건 숯불을 입에 가져다 댈 때 입을 쩍 벌리는 소년 순교자의 모습, 또 바위에 구멍을 뚫고 말에 줄을 매 달리게 해서 그 줄 때문에 끌려오는 머리가 바위에 부딪혀 죽게 하는 그런 장면들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뇌리에 깊이 새겨진 것은 스스로 손을 물어뜯어 살점을 떼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그 분이 손자선(토마스 1844-1866) 성인입니다. 그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젊은 나이에 순교하였습니다. 매일의 일과에 충실해서 모범을 보이기는 했지만 단호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1866311일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고 그 후 며칠이 지난 뒤 덕산 관가에서 기별이 오기를 다블뤼 주교를 체포할 때 압수했던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교우들 중 아무도 무서워서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손자선 토마스는 포졸들이 빼앗아 간 천주교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그가 교우인 것을 알자 손자선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옷을 벗기어 곤장을 맞고,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포박을 당했습니다. 몇 번씩이나 거꾸로 매달아 오물을 얼굴에 붓고 입에도 처넣고 하였습니다. 이 더러운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는 다만 잘 됐다하는 한마디 말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잘 됐단 말이냐?”

며칠째 세수를 못했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세수를 시켜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피땀을 흘리게 해드린 죄인에게는 잘 된 일이고, 게다가 목이 말랐었는데 당신들이 내 입에 넣어 준 것은 내 죄 때문에 예수께서 마시신 쓸개와 초 대신이 되는 것이니 꽤 잘됐단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든 순교자들이 그렇듯이, 그분들이 가장 바랐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교와 닮아가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덕산 원은 그를 해미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미로 이송되어 가자, 그 곳 관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덕산에서 배교만 하면 놓아준다고 했는데, 왜 천주교를 버리지 않고 해미까지 왔느냐? 배교할 때까지 저 놈을 매우 쳐라

그래서 형리들이 그에게 다리가 부러지기까지 고문을 가했지만 신앙증거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관장은 배교라고 간주할 수 있을 만한 어떤 표도 얻어내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하여 독특한 술책을 생각해 냅니다.

말만 가지고는 네가 배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에 불충분하다. 만일 네가 네 이빨로 네 살을 한 점 물어 뜯어내지 않으면 네가 배교한 것으로 치고 돌려보내 주겠다.”

그러자 손자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결코 배교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왜 그런 사람으로 치시겠다는 것입니까? 제 몸을 천주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니 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 몸을 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장께서 제게 대해 아버지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게신데, 그렇게 하라고 명하시니 제 신앙을 지킨다는 증거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단 한 번씩 물어서 양팔에서 살을 한 점씩 뜯어냈습니다. 그러자 관리는, “그만 됐다. 사형에 처하게 너를 감사께로 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주옥에서도 심한 고문을 받았고, 세 차례 고문 끝에 기절하였습니다. 감사는 그렇게도 끈질길 데 지쳐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손자선 토마스는 1866331(518?)공주 옥에서 2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그 후 사흘이 지나서 교우들이 토마스의 시신을 찾아서 덕산의 개골산 앞에다 묻었다가 20일 후에 신리로 옮겼는데 많은 시체 중 손자선 토마스의 것만은 도무지 썩지도 않고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고 당시의 교우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네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이번 추석 때 TV에서 그동안 방영되었던 불후의 명곡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들만 엄선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땀과 감동과 눈물이 어우러졌던 무대를 보면서 나도 저런 무대를 한 번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순교자들을 본받고 싶어 하는가?’

이렇게 물을 때는 자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더 그분들을 닮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엄청난 고문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 팔목을 한 번에 물어 살을 뜯어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피가 아니지만, 그 피를 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소진하여 순교하는 것을 백색순교라 부릅니다. 우리나라 백색순교의 대표주자는 최양업 신부님일 것입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길거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지금의 백색 순교자로는 이태석 신부님이나 요셉의원 고 선우경식 원장님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선우경식 원장님은 20084월 예순 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영등포 쪽방촌의 슈바이쳐로 불리며 가난하고 소외받는 빈민을 위해 살았습니다. 박사님은 노숙자와 쪽방촌 사람들, 알콜 중독자들을 위해 무료 의료봉사를 펼쳐서 극빈자의 아버지로도 불렸습니다. 1969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신 후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하시고 귀국하셔서 생활하시다가 1983년부터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쉬지 않고 봉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요셉의원에는 20년간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빈민 42만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43만 명의 환자를 진료해왔습니다. 특히 박사님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어머니를 모시고 선친이 물려주신 작은 집에서 사시면서 평소에 근검절약의 모습을 보이시면서 봉사에만 전념하셨다고 합니다. 늘 헌자동차를 몰고 다니셨는데 누군가 새 차를 사준다고 해도 그 돈으로 의약품을 달라고 거부할 정도셨다고 합니다.

선우 선생은 그 동안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환자들을 정열적으로 돌보시다가 작년 봄 뇌일혈로 쓰러져 뇌수술을 받으셨고, 잠시 회복을 하셨으나 위암이 발견되어 두 차례의 위절제술을 받으셨습니다. 선우 선생은 이 세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 중에도 병세에 회복기미가 있으면 병원에 나가셔서 환자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418일 선우 선생은 끝내 중환을 더는 견디지 못하시고 63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교란 피를 흘리건 흘리지 않건 사랑을 위해 자신을 소진시키는 삶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굳이 팔목을 물어뜯으며 신앙을 증거 할 필요가 없다면 바로 그런 정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삶은 다르지만 정신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선우경식 선생님 정도면 아마 지금 배교하라고 하면 기꺼이 팔목을 물어뜯으실 것 같습니다.

교부이자 평신도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155? ~230?)너희들이 우리를 타작(살해)할 때 마다 즉시 우리는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난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호교론 50,13)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그분의 피흘림을 따르는 것입니다. 피흘림 없이는 어떠한 생명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이를 악물지 않는다면 어떻게 피가 흐르겠습니까? 정도가 약하면 그냥 아프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가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신의 살을 물어뜯을 정도의 강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나는 그런 순교의 상황이 오면 어느 정도의 힘으로 나의 살을 물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순교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얼마나 아끼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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