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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남자는 제 부모를 떠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3 조회수89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복음: 루카 8,19-21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


렘브란트 작, (1647-49),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278 x 388mm, 암스테르담 미술관


     < "남자는 제 부모를 떠나" >

      

이무석 교수는 자신의 책 ‘30년만의 휴식’(231-232)에서 자신이 썼던 논문 주제인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분석해 놓았습니다.

고흐는 스물일곱 살에 미술을 시작해서 서른일곱 살에 자살하기까지 불과 10년 동안 850여 점의 창조적인 미술 작품을 그린 천재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불행했고 정신이상으로 귀를 자르더니 2년 후에는 가슴에 권총을 쏘고 자살했습니다. 이 교수는 고흐의 이런 삶 이면에는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고흐는 엄격한 칼빈주의 목사인 아버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엄격함에 고흐는 죄책감을 많이 느꼈고 그것을 씻기 위해서는 자신을 학대하거나 혹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지나친 연민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거 누예넨의 광산에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는 불쌍한 광부들을 위해 자기 빵과 매트리스까지 주고, 자신은 2년 동안 거의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헤이그에서 그림 공부를 할 때는 늙은 창녀와 그녀의 딸을 먹여 살려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들을 그렸고 그들의 거친 손을 예찬했습니다. 이런 동정심은 바로 아버지에게 짓눌려 고통 받아온 불쌍한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면서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약한 자들을 돕는 선한 행동을 한 것이므로 죗값을 치르는 속죄 행위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의 그림은 극적으로 발전했고, 대작이 쏟아져 나왔으며, 색채도 화려해 졌습니다. 아마 그를 괴롭히던 엄한 아버지로부터의 해방 덕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서 아버지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처럼 남을 비난하고 폭발적으로 화를 자주 냈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아주 안 좋았다고 합니다. 보통은 미워하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않는 이상 자신도 결혼하여 아내에게 폭력을 행할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귀를 자르던 날 밤도 동거하던 고갱과 싸운 끝에 귀를 잘라 고갱의 단골 창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생겨난 분노와 죄책감, 자학성과 보복의 마음에 순종한 것뿐인 것입니다.

고흐를 도와 준 사람은 그와 네 살 터울인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 매매업자였는데 고흐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 결혼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업도 잘 되지 않아 수입도 시원치 않게 되어 형이 부담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자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죄책감 때문에? 외로워서? 그건 본인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때까지도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귀를 잘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동생에게까지 부담이 되어버린 자신을 그렇게라도 혼내고 벌줘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저는 사제가 될 때 이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했고, 이번 추석에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아들을 보고 싶어 성당에 찾아오시기도 하고 또 아들을 자주 보고 싶어 하지만 가끔은 신자가 먼저냐 어머니가 먼저냐를 놓고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차피 사제가 된 이상 신자를 우선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저를 낳으신 이유는 하느님께서 저를 사제로 만들어 신자들을 돌보라는 궁극적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가 되려거든 부모나, 아내, 형제, 친구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여자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시고, 또 과부가 된 불쌍한 어머니를 떠나지 않으시면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의 머리요 신랑으로서 교회와 하나 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마마보이는 한 여자와 온전한 혼인생활을 하기 힘든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고, 혹은 상처도 주었던 부모를 떠나야만합니다. 부모를 떠나지 못하고 그 영향 하에 있다 보면 고흐처럼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영원한 아이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한 형제가 결혼했는데 결국 며느리가 시어머니 등살에 견디지 못하여 가정이 파괴되는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에서 이 복음이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외면하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사실 당신을 믿는 이들을 제쳐놓고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러 나가셨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와 형제들을 외면하는 듯한 오늘 복음은 30이 넘어 아버지로부터 받은 공적인 소명을 위해 세상에 나온 성인으로서 제 부모를 떠나 교회와 한 몸을 이루려는 그리스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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