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음미하고 되새김질해야할 예수님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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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13-09-23 | 조회수554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음미하고 되새김질해야할 예수님 말씀
강의나 강론을 위해 사람들 앞에 설 때 마다 절실히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의 한계입니다. 말로는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말에 뒤따르는 진정성, 실효성, 육화된 말, 삶에 녹아든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멋들어진 말이라 할지라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에 부족합니다. 때로 많은 말들은 공허한 메아리,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을 진정으로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두 인격,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어부 베드로와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세리 마태오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 사이의 만남은 또 어떻습니까?
사람을 만나는 예수님의 눈빛은 더없이 따뜻했습니다. 인간을 향해 펼치는 예수님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태도는 진실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을 향해 던지는 그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심오한 의미로 충만했고, 동시에 힘과 생명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 예수님 말씀에 힘입어 사람들은 회개의 길로 접어들었고 새 삶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던지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냥 흘려버릴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마음 깊이 새겨서 들어야 합니다. 말이나 소가 곡물을 천천치 씹고 또 씹고 거기다 되새김질하듯이 천천히 음미해야할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정녕 보물처럼 대하고 음미하고 또 음미할 때 그 말씀은 우리 내면 깊숙한 영혼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 안에 차곡차곡 쌓인 깊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시킬 것입니다.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게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대하는 제 태도를 돌아봅니다. ‘쇠귀에 경 읽기’란 말처럼 건성건성 듣습니다. 많은 경우 형식적이고 의무적입니다. 소극적이고 폐쇄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대하는데 있어서 진실한 마음, 성의 있는 태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하는 사람들은 삶이 통째로 바뀌는 은총, 삶이 크게 한 단계 성장하는 은총을 체험하곤 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서 진지하게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하고 알려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표면적으로 꽤 의아하고 특별한 예수님의 말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어김없이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저것 보세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데, 예수님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찾아왔는데도 나가서 인사도 않는군요.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인류 구원 사업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기본이 먼저 되어 있어야지요. 기본이!”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정성껏, 진지하고 성의 있게 귀담아 들은 사람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기도 하지만 인류 전체를 구원해야 할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이십니다. 물론 어머니 마리아에게 극진한 효심을 표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사명을 안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이나 이스라엘만 구원하실 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하셔야 할 크신 하느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새로운 주인, 새로운 왕으로 모신 우리 모든 인류는 이제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가족들입니다. 피를 나눈 혈연도 중요하지만 영혼과 사랑을 나눈 영적 가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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