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는 이렇게 시작됐다

성지순례라는 말은 온라인에서 재미있는 글이나 논란이 되는 곳에 링크를 따라 찾아가는 놀이의 뜻이 되었습니다. 댓글에는 성지순례 왔다며 "합격하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남깁니다.

단순한 온라인 놀이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성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끔찍하고 잔인한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와 정치 이야기 그리고 종교 이야기. 성지순례 역사의 첫 페이지를 방문해 볼까요?

세비낭은 찔레나무의 제주 방언입니다
김훈 소설 흑산
저자 김훈 | 출판 학고재 | 발행일 2011년10월20일

본래 성지는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장소입니다. 신앙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목숨을 바친 신자들을 순교자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9월을 성지순례 성월의 달로 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어떻게 순교자가 이 땅에 나타났고 오늘날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는 믿고 읽는 김훈 작가의 소설 '흑산'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학자 '다산 정양용'을 모르는 분들은 없지만, 세례명 요한 정약용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정약용은 조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정조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개혁가이자 실학자였습니다. 1800년 갑자기 정조가 승하하고 1년 후 이 땅에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순조 1년이었던 1801년,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왕후와 벽파는 천주교 신자가 많은 남인을 제거하려는 술책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합니다. 그 역사가 신유박해입니다.

정약용 일가와 천주교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정약용 3형제,
과연 신(神)을 버렸는가?

지난 2012. 1. 26(목) 방영된 KBS 역사스패셜은 정양욕 3형제와 신유박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면 지금 바로 플레이! 유튜브에 ID - KBSDocumentary로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은 총 10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ETw0xH61Gc&feature=share&list=PL0C2EA61CBC153CB8


몇해 전 이서진, 한지민 주연의 MBC 드라마 '이산'을 즐겨 보았다면 영조와 정순왕후 그리고 사도세자와 정조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정순왕후는 15세에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했고, 친정이 노론의 중심가문이었던 것에 비해 사도세자는 소론에 기울어져 노론에게 비판적이었습니다. 그 내외가 어머니뻘인 자기보다 10세나 연상인 데서 빚어지는 갈등으로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정순왕후는 1800년 정조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시파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해 1801년에는 격렬하게 천주교 탄압을 일으켜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형제 일가를 중심으로 남인들을 축출했습니다.

남인이었던 이가환, 정약종, 권철신, 홍교만 등과 주문모(중국인 신부)는 사형당하고 정약용, 정약전 등은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유박해
가혹했던 신유박해를 묘사한 그림
황사영 백서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의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된 황사영백서

비록 조선시대이기는 했지만 신유박해의 명분을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양용의 조카 정난주의 남편인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시에 있는 베론의 산중에 있는 토굴 속에 몸을 숨겨 백서를 썼습니다. 황사영도 정약용 못지 않게 약관 16세에 초시, 17세에 복시에 장원급제하여 정조 임금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처숙인 정약용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했고, 박해의 참상과 순교자 현황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외국의 지원을 청원하는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를 작성해서 중국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황사영백서는 두 자 가량되는 명주천에 썼다하여 백서라고 불립니다.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의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으로 보내려 했던 백서는 무기를 가지고 수백척의 배를 이끌고 조선으로 와 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백서는 발각되었습니다. 황사영은 대역죄인이 되어 사지가 찢겨죽는 능지처사의 형을 받아 순교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인과 천주교를 탄압하려던 명분이 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탓으로 이 고장에 유배된 유일한 증거자인 정 마리아 난주님을 순교자라고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보편 교회도 피 흘려 순교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사영의 처 정난주는 제주도에 유배되었습니다. 제주가 맞이한 첫 번째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정난주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에서 관비가 되어 천수를 다한 뒤 모슬포 뒷산에 묻힙니다. 남편은 능지처참으로 죽고, 젖먹이 아들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아들을 노비로 살게 하지 않으려 뱃사공을 매수하여 아들을 떠나보냅니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었다고 보고해서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고 합니다. 정난주는 노비의 신분이 되었지만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이 있었고 믿음의 덕으로 '서울 할머니'라고 불리며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성지는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정난주 마리아처럼 그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를 방불케하는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하다면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 성지순례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세비낭은 찔레나무의 제주 방언입니다

정난주 마리아의 묘
대정성지, 정난주 마리아의 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10.

9월, 종교를 떠나서 우리의 역사,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가까운 성지를 찾아 방문해보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순교자들은 단지 종교를 버리지 않았던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지향했던 것으로 평가받을 자격이 충분할 것입니다.

이 땅의 잔인하고 가혹했던 박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가시세비낭이 9월 25일(수)부터 27일(금)까지 홍대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CY시어터에서 열립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통해 고난을 겪으면서도 믿음과 행복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극단 대월 홈페이지 : http://meethappy.kr


: 이엘리 : 박찬진 : 오래미
: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 CY시어터 (2호선 홍대 2번출구)
: 2013년 9월 25(수), 26(목) 20시 / 27(금) 16시, 20시
: 02-762-2067 / 010-4632-2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