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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8 조회수809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28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Lk.9,44)
 
제1독서 즈카 2,5-9.14-15ㄷ
복음 루카 9,43ㄴ-45
 
어린이들을 빼고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이가 들면 노안도 오고,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또 몸 전체가 점점 약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심지어 기억력도 좋아지지 않게 되니까요. 그래서 활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을 보면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참 좋을 때다.”

이처럼 나이 드는 것을 신나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까 나이 들면서 생기는 그 모든 단점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라고 말하더군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큰 것만 보고, 멀리만 보고 살라는 뜻입니다.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소리는 듣지 말고, 필요한 큰 소리만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가 시리고, 약해지는 것은 따뜻하고 연한 음식만 먹어서 소화불량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은 멀리 있어도 연세 드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것은 살아온 복잡한 세월을 기억하지 않고, 다가올 하느님 나라만 바라보라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모든 것들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안에 하느님의 숨겨진 배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이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숨겨져 있어서 그럴까요?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하느님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잣대만을 내세워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미리 예고하십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이를 미리 준비시키고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도록 미리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그 말씀에 관해 묻는 것조차 두려워 침묵하고 말지요.

지금까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만 보아왔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영광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면 거부하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세상의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행동만이 삶에 힘을 주고, 절제만이 삶에 매력을 준다(장 폴 리히터).


신학생이 제게 준 선물.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잘 그렸죠?

 
하느님의 배려

재미있는 유머 하나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과 아담이 에덴동산을 거닐 때 문득 아담이 하느님께 묻습니다.

“하느님, 하와는 정말이지 무척 예뻐요. 그런데 왜 그렇게 예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늘 그 애만 바라보지 않겠니?”

그러자 아담이 다시 하느님께 여쭙습니다.

“하와의 피부는 정말로 부드러워요. 왜 그렇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늘 그 애를 쓰다듬어 주지 않겠니?”

“그런데 하느님, 하와는 조금 멍청한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렇게 만드신 거죠?”

“이 바보야, 그래야 그 애가 널 좋아할 거 아니냐?”

어때요? 정말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 나와 연관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없어야 한다는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나를 위한 하느님의 배려는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하면서 숨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찾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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