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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참 가난과 믿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8 조회수79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26주일



<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복음: 루카 16,19-31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참 가난과 믿음 >

              

얼마 전에 시집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그 안에 있는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란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고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영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시인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 것이 공중목욕탕에 올 돈을 아끼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저자가 아버지를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 생각을 바꾸기를 원치 않았기에 저자도 아버지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등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아버지의 등짝이 자신을 위해 저렇게까지 지게자국으로 죽어있기를 원치 않았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죄송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믿음에 따른 구원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비유 안에 이름이 나오는 경우는 부자와 라자로, 이 비유가 유일무이합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라자로는 예수님이 죽고 무덤에 묻혔지만 다시 살려주신 라자로와 이름이 같습니다. 즉 유다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원했고, 예수님은 기들이 원하는 대로 죽어 부패한 이를 다시 살리는 표징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앞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유 말씀대로 새로운 모세인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한 이들은 어떠한 표징 속에서도 결코 믿음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예언자는 구약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이 직접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보내셨다는 것 자체가 표징인데, 자신들이 믿기를 원치 않는 것을 표징이 없는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면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기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믿을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믿기 위해 버리기 싫은 것이 많은 이들’, 이들이 곧 오늘 복음에서 부자의 상징인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파견하셨던 것처럼, 당신도 교회를 파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바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표징입니다. 이 교회를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어떤 표징을 주더라도 믿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믿으려고만 한다면 교회 안에는 의심할 수 없이 믿을 수 있는 수많은 표징들이 있습니다. 믿게 되면 지금까지의 내 삶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계속 믿을 수 있는 표징 타령만 하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부자처럼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만이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교회를 믿고 하느님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거지 라자로의 상징은 믿기 위해 포기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짐 케리 주연의 트루먼쇼란 영화는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커다란 세트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살아간다는 설정입니다. 부모도 가짜고 직장도, 아내, 친구들까지도 다 배우들인 것입니다. 오직 짐 케리만 자신이 텔레비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방영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짐 케리를 불쌍하게 생각한 한 여인이 이 거대한 세트장 밖에 참 세상이 있다고 말해버립니다. 물론 그 여인은 그 덕에 직장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짐 케리는 이런 모든 정황을 포착한 뒤에도 그 섬을 탈출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바로 바다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부모를 죽게 했고 또 자신도 죽을 뻔 했던 바다. 짐 케리는 갈등을 합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안락한 세상, 그것을 등지고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가? 그러나 주인공은 그 여인의 말을 믿기로 하고 모든 안락함을 뒤로 한 채 작은 배 하나를 타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그 여인의 사랑이 그만큼 커서 그것에 비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누려왔던 세상 모든 안락함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가난한 라자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강렬한 폭풍을 뚫고 바다를 건넙니다. 바다를 건너서 자신을 기다리던 여인을 참 세상에서 만나게 됩니다. 믿기 위해서는 무언가 나의 것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결국 믿지 못하는 것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믿어서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인 것입니다. 이들이 오늘의 부자들인 것입니다.

 

저는 사제가 되면 행복하다고 주위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못하는데 무엇이 행복하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사실 결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믿기 싫었던 것입니다. 믿기 위해서는 결국 믿음으로써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버리라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어떤 자매님이 집에 오셨다가 쌓여있는 많은 잡동사니들을 보고 버리라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또 어머니는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애착도 매우 강하십니다. 몇 백 원 때문에 옥신각신하며 돈을 아끼시는 분이지만, 집을 나온 한 가출한 아이를 먹여주고, 씻겨주고, 입혀주고, 며칠 동안 재워주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는 우리 저금통들을 모조리 털어 훔쳐 달아나버렸습니다.

몇 년 전에 어머니가 고아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셔서 돌아오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회고하시고, 또 친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신은 어떤 가난한 집에 맡겨졌다가, 거기서도 키울 형편이 안 되어, 한 부잣집으로 보내졌는데 그 집에서는 공부도 안 가르쳐주고 일만 시켰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에게는 버려지는 두려움과 애정 결핍이 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버려진 물건 안에서도, 혹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도 그 안에서 외로운 당신을 발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몇 년 전에 들었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고아의 아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고아의 아들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자 어머니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니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러니 어머니와의 사이에 있었던 강을 건넌 느낌입니다. 누군가 미워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책임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믿는 사람이 가난한 라자로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것을 잃기 싫어서 믿지 못하는 사람이고, 거지 라자로는 믿음이 좋아 자신이 가진 것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왜 나에게 믿음을 위한 표징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기 이전에, 내가 믿기를 원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반드시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해져야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내가 가진 좋은 것 - 그것은 자존심이 될 수도 있고, 애정, , 명예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고 그것부터 버려나갈 수 있다면 믿음이 훨씬 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기 위해 먼저 가난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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