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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9 조회수708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My child, remember that you received
what was good during your lifetime
while Lazarus likewise received what was bad;
but now he is comforted here, whereas you are tormented.

(Lk.16,25)
 
 
제1독서 아모 6,1ㄱㄴ.4-7
제2독서 1티모 6,11ㄱㄷ-16
복음 루카 16,19-31
 
많은 어머니들, 특별히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업주부들은 종종 정체성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고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갔다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간호사가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며 환자를 찾더랍니다.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으니 ‘저 사람은 접수를 하고서 어디를 간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그 이름이 바로 자신의 이름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위 플레이보이라는 남자들이 주부를 유혹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내게 귀한 사람입니다.’라는 표시를 하기 위함이지요. 그만큼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사람들은 전업주부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기준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순간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등등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다른 복음서의 비유 말씀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다른 복음서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라는 익명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반면, 여기서만큼은 ‘라자로’라고 이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손길이 닳아 있는’이지요. 그런데 그의 이 세상 삶이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는 것 같습니까?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했을 정도로 가난했으며, 온몸에 종기투성이 가득해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병자였습니다.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는 그 모습은 인간적인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바로 죽어서 라자로와 부자의 위치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느님의 손길을 영원히 느낄 수 있게 되지요.

이 말씀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돈이 중요하고 높은 지위가 중요하다면서 내가 지금 실천해야 할 사랑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먼 훗날에 땅을 치고 후회할 일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가치가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가치만이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 줄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 준다(안톤 체호프).


부자와 라자로 성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내가 이 땅에 남길 유산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기부 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말까지 남겼지요. 그러면서 자식들에게는 딱 먹고 살 만큼만 물려준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나는 내 자신의 0.018%만 물려준다.”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0.018%만 되어도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억 정도라고 하네요.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99.982%를 기부하겠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결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빌 게이츠처럼 적은 것을 취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이 표양은 더 좋은 유산을 물려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 그 자체보다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부가 대물림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들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될 때 하느님 나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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