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자상 -환대와 관용의 사람- 2013.9.30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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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9-30 | 조회수56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13.9.30 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347-420)기념일, 즈카8,1-8 루카9,46-50
.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자상 -환대와 관용의 사람-
. 오늘은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자상-환대와 관용의 사람-’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 복음의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제자들의 공동체는 과열된 경쟁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선의의 경쟁이란 말도 있지만 경쟁으로 인한 분열 등 그 피해도 막심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곁에 세우시고 다음 말씀으로 제자들의 과열된 분위기를 잠재우십니다.
.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9,48).
. 저는 이 말씀에서 ‘환대의 섬김과 관용’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환대로 받아들임이, 바로 예수님을 환대하는 것이자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란 놀라운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환대와 관용의 사람이야말로 가장 작은 사람이자 가장 큰 사람입니다. 바로 땅과 바다 같은 사람입니다.
. “참 재미있습니다. 똑같은 땅의 밭인데 야콘을 심으면 야콘 밭이 되고 배추를 심으면 배추 밭이 되고 배나무들을 심으면 배 밭이 됩니다.”
땅의 밭은 환대와 관용을 상징하며 하느님은 바로 이와 같은 분입니다. 이런 낮아지고 낮아져 환대와 관용의 땅이 될 때 하느님과의 만남을 일컬어 상징하는 말이 지평선(地平線)입니다. 아무리 높은 산도 낮고 넓은 환대와 관용의 터전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 역시 모든 것을 받아들여 바다입니다. 바다 역시 환대와 관용의 상징이고 하느님 역시 바다 같은 분이십니다. 모든 강들이 흘러 가장 낮은 곳에 이르러 드넓은 바다가 될 때 비로소 하늘과 바다가 닿아 수평선(水平線)입니다. . 모두가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란 진리를 들어내는 예화들입니다. 물론 가장 작은 사람이 상징하는바 낮아지고 낮아져 땅이 되고 바다가 된 환대와 관용의 사람이요 바로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자상입니다.
. “막지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예수님의 관대한 마음이 잘 들어납니다. 스승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의 구마행위를 엄단해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에둘러 거절하시는 관용의 예수님이십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어느 무신론자에게 보내 편지 중 한 구절도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 무신론자는 그들 자신의 양심을 지키면 된다.’(이탈리아 일간지-라 리퍼블리카9.12일).
. 이 말씀에 대한 편집자의 평입니다.
‘지도자의 격(格)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
. 예수님을 닮을수록 이런 넓고 깊은 관용의 사람이 됩니다. 특히 교회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관용의 덕입니다. 이런 환대와 관용의 작은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 때 즈카르야의 예언도 그대로 실현됩니다.
. “나는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살게 하리라. 그러면 진실과 정의 안에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이 하느님이 되리라.”
.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믿는 이들의 공동체 삶의 자리가 바로 새 예루살렘이요, 진실과 정의 안에서, 환대와 관용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우리의 하느님이 되심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시편1,2-3참조).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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