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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3일(목) 聖女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님..등♥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02 조회수448 추천수0 반대(0) 신고



10월3일(목)
음8/29
聖女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님..등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10.3)

성인명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y Josepha Rossello)
축일 10월 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11-1880년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요세빠, 요셉파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Savona)에서 가까운

알비솔라 마리나(Albisola Marina)에서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1837년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사보나 교구의 주교가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고 소녀와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40년 이상 이 수녀회를 운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이미 그녀의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 나갔다.

1880년 12월 7일 선종한 그녀는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작은형제회의 제3회원으로서

 

어린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수녀 공동체로까지 발전시킨.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현세의 모든 수도 성직자들을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제라르도(10.3)

성인명 제라르도(Gerard)
축일 10월 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수도원장
활동지역 브로뉴(Brogne)
활동연도 880?-959년
같은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브로뉴의 성 제라르도(Gerardus)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880년경
벨기에 나무르(Namur) 교구의 포스(Fosse) 근교인 스타브(Stave)의 귀족 집안에서
상티오(Santio)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ege)의 주교인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성 게라르두스 역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군대 안에서도 그의 경건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인 브로뉴에 있는 한 경당을 크게 재건하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의 유해를 안치했다.
917년경 나무르 공작은 성 게라르두스에게 프랑스 사절의 임무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수행원들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수도승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사절의 임무를 마친 후
나무르 공작과 스테파누스 주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생드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어 생활하였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 브로뉴로 돌아온 그는 수도원 근처의 작은 골방에 칩거하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919년 그는 성 베드로와 성 에우게니우스에게 재봉헌된 브로뉴의 성당에
토지를 기증하였다.
923년 새 수도원의 아빠스가 된 그는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성장하던 934년,
로렌(Lorraine)의 지슬베르(Gislebert) 공작으로부터 에노(Hainaut)에 있는 수도원을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개혁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개혁 운동은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만 일곱 개의 수도원에서 행해졌는데, 그 후 이 운동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953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브로뉴로 돌아가
몽 블랑델(Mont-Blandel)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다.
그는 로마로 교황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개혁한 공동체들을 방문하였다.
그 후 브로뉴에서 머물다가 959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브로뉴에 안치되었고,
1131년 리에주의 주교인 알렉산데르(Alexander)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의 대리로 성인의 시신을 기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 예식은 사실상 시성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게르마누스는 성인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호사스런 귀족의 삶을 멀리하고
주님의 일에서 큰 기쁨을 찾으신 님


스스로의 엄격한 금욕 생활을 통해
수도원의 개혁을 추구하신

 성 제랄드 님이시여,

 

세속에만 집착하는 저희를 위하여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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