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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묵주기도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06 조회수1,066 추천수15 반대(0) 신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묵주기도

 

기도의 사람,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님(1801-1890)은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한 탁월한 신학자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 영성가이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끊임없는 기도는 그의 삶의 지주였습니다. 연세 드실수록 추기경님의 기도에 대한 애정, 특별히 가톨릭 성직자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무일도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주로 시편으로 이루어진 성무일도를 너무도 좋아하신 나머지 이런 표현까지 쓰셨습니다. “성무일도는 내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만년에 이르러 문제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평생토록 너무도 많은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셨던 나머지 거의 실명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추기경님을 간호하던 분의 증언에 따르면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추기경님은 큰 실망과 좌절상태에 빠지셨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더 이상 그렇게 좋아하셨던 성무일도 기도를 바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좌절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성무일도 대신 그분께서는 또 다른 영적 무기를 손에 드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묵주였습니다. 실명 후 추기경님께서는 묵주를 손에 드시고 하루 온종일 묵주기도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관조하는 묵상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죽기 일보직전까지도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추기경님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의 18번 기도, 묵주기도

묵주기도는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기도, 언제 어디서건 간단하게 바칠 수 있는 보편적인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빨리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 같은 기도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잡념 가운데 설렁설렁, 대충대충 바쳐도 되는 가벼운 기도도 결코 아닙니다. 또한 묵주기도는 기적의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잡다한 이기적인 바람들을 한데 모아 성모님을 졸라대는 수준 낮은 기도는 더욱 아닙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묵상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복음서 전체와 예수님의 일생 전체를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구원사업 전체를 관상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묵주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복음의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복음에서 출발해서, 복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복음을 실제 삶 안에서 실천하고, 다시금 복음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기도가 묵주기도인 것입니다.

 

저 역시 오랜 세월 묵주기도를 그저 습관적으로 바쳐왔습니다. 그저 열심히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만 반복하며 기계처럼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으로는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곳 저 곳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거나 이런 저런 잡념들로 가득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기도의 방향을 살짝 틀어봤습니다. 각 신비, 각단에 해당하는 복음구절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이지 묵주기도가 아주 훌륭한 묵상기도, 정말 대단한 관상기도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묵주기도를 드렸더니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묵주기도와 함께 예수님의 생애, 성모님의 생애를 자주 묵상하다보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현실이 견딜만한 날들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에 비교할 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고통스런 현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삶에 대해서도 조금씩 Yes라고 대답할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상처투성이인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나, 그리고 이웃들을 좀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한번 묵주기도를 바쳐보세요.

다양한 방식의 묵상기도와 관상기도가 묵주기도와 더불어 가능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활용했던 묵상을 조금만 소개해드립니다. 입으로는 열심히 성모송을 되풀이하지만 마음과 정신을 좀 더 집중하고 고양시켜 성모님과 예수님의 삶 각 단계를 묵상하면서 내 삶과 연결시켜 봤습니다.

 

환희의 신비 제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한 가냘픈 나자렛 소녀가 불러오는 배를 주체 못하고, 또 그것에 대해 똑 부러지게 변명 할 수도 없게 될 상황,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험난한 십자가의 길, 그것이 바로 마리아 앞으로 펼쳐질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용감하게 라고 대답합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가 됨으로 인해 그녀에게 다가올 갖은 시련들을 예견하면서도 기꺼이 라고 응답합니다. 마리아는 오직 하느님께만 신뢰를 두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자신의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삶의 모든 국면들, 특히 나약한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모든 인생의 부정적 경험 앞에서 저도 마리아처럼 기쁘게, 기꺼이 !’라고 응답하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의 초대에 설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라고 응답하겠습니다.

환희의 신비 제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이 노년에 될 때 까지 자식이 없다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부터 마음씨 착한 마리아는 이런 마음을 먹었겠지요. “연세도 많으신 분이 아이를 가져 얼마나 힘드실까? 주변의 눈도 만만치 않을텐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실까? 부족하지만 내가 찾아가서 위로도 해드리고 보살펴드려야지.” 마리아의 한 평생은 오로지 타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들 예수님과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시선은 자신에로가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에게로, 이웃에게로, 세상에로 쏠려있었습니다.

우리가 깊은 슬픔에 잠길 때,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여겨질 때, 세상살이가 너무나 힘겹고 혹독해 견디기 힘들어질 때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분, 성모님이 계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성모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 죄인들을 걱정 가득한 눈으로 굽어보시는 성모님, 상처투성이인 우리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내려 보시며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보낼까 노심초사하시는 도움의 성모님, 오늘도 흔들리고 방황하는 제 인생길에 항상 동반해주십시오.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마다, 성모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겸손했던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 정겨웠던 나자렛 성가정에서의 생활, 희망에 찬 출가, 활기찼던 공생활, 연민과 사랑이 가득했던 착한 목자로서의 삶, 처절했던 십자가 죽음, 영광스런 부활을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내적인 번민이나 슬픔, 상처나 고통이 천천히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묵주기도 안에서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 정성껏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다보면,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이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생활성서 20125월 기도레슨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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