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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간절히 원하던 은총을 받고 나면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3 조회수660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제28주일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  17,11-19
 

 

 

간절히 원하던 은총을 받고 나면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십니다. 이 시간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가운데 삶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오로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차고 넘칠 때는 물론 부족함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감사한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잘되면 자기가 잘했기 때문이고 잘못되면 탓을 남에게 돌리고 심지어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운함이 앞섭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면,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또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순간을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 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를 입고도 전혀 아닌 양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아니 더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을 부르며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카 17,13) 하고 외쳤습니다. 사실 그들은 ‘부정 탄 사람들’로 낙인 찍혀 멀리 동네 밖에 쫓겨나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법을 무시하고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즉각 고쳐 주시지 않고“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하고 이르셨고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떼를 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사제에게 가는 동안에 완전히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아직 미숙한 신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면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었고 병이 나음 받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을 고친 분이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졌는데 한 사람만이, 그것도 평상시 은총을 많이 받은 유다인이 아닌 사마리아사람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만이 성숙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나병을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선택 받은 사람이 누려야 할 혜택을 누린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이었고 자신이 어떤 것을 내세운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간구하였고 결국 얻었으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치유되었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갈 수 있었다는 것이 더없이 큰 기쁨입니다. 은총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인은 단순히 육적인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치유 받은 것을 통해서 치유하시는 분을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1독서를 보면 나병환자인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습니다. 그러자 어린아이 살처럼 새 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어했습니다. 거듭 받아달라고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말합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엘리사를 통해서 하느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깨끗해진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아만도 치유를 받은 사마리아 사람도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무덤에서 나온 나자로를 비롯하여 치유를 받았던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이 아무리 깨끗해도, 치유를 받았어도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몸의 가치는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깨끗해진 몸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온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나아만이 주님만을 섬길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자, 여러분은 저를 만난 것이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중요한 것은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옆에 분을 보십시오. 만나서 감사합니까?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갈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분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다면 옆에 계신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옆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느님께로 갈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복덩이는 복덩이대로, 골치덩이는 골치덩이대로 하느님만을 갈망하게 해줍니다. 겸손하게 더 간절히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니 골치덩이를 만난 것도 감사하십시오.

 

치유 받은 나병환자 아홉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은총을 입었음에도 하느님을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병이 나은 것을 확인 받기 위해서 사제를 찾아갔습니다. 병이 나아서 감사드리는 것보다 내가 이제는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받는 것이 더 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지요? ‘화장실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는데 그 아홉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는 것은 결코 마땅히 받아야 할 자격이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은혜를 당연하다고 생각 말고 받은 은혜를 통해서 감사를 드리고 능력의 하느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 내 마음 그분께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으니 내 마음 기뻐 뛰놀며 나의 노래로 그분을 찬송하리라”(시편28,7). 고 노래하였듯이 매일 매순간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5-17).

 

매사에 감사해야 하겠지만 근원적인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며 셋째는 이 지상의 삶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 천상의 삶이 약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기쁨중 하나는 돌아갈 고향, 천국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 안에서 더 큰 감사의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먹으라고 사과를 하나 주었습니다. 아이는 사과를 받으면서 아무 말이 없어서 엄마가 ‘애야 사과를 주었는데도 왜 말이 없느냐?’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엄마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아이의 말은 ‘껍질은 왜 안 깎아주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사과를 받은 것에 감사는 안 하고 껍질을 깎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철없는 아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가 없고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감사를 하면 마음이 풍성해 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즐거워집니다. ‘감사는 펌프에 마중물과 같다’고 합니다. 펌프를 사용하지 않다가 다시 사용하면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올라옵니다. 물을 올라오게 하기 위해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마중물을 부으므로 물이 계속 올라오는 것처럼 감사를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이 계속 많아집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섭섭하게 여겨질 때가 언제입니까?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할 때입니다.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수고한 것은 알아주지 못하고 해 준 것이 없다면서 불평할 때 부모님들은 속상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것을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말이라도 하면 부모님은 행복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더해주십니다. 담을 그릇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간절히 원하던 은총을 받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얼굴을 바꾸지 말고 늘 감사하는 한 주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남에게 베푼 것은 모래 위에 새기고, 은혜를 입은 것은 돌 판에 새겨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받은 것은 잊고, 베푼 것에 대한 위안과 보상을 기대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 그리고 부모 형제 친척, 자녀를 통하여, 또한 이웃에게 받은 많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느 신부님이 말을 팔려고 내어 놓았다.

... 말을 사러 온 사람이 사고 싶어 하자, 신부님이 말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 쓰는 말을 써야 알아듣습니다.

'가 !' 하려면 '하느님 감사합니다.' 해야 하고

'서 !' 하려면 '알렐루야!' 해야 합니다."

말을 사러온 사람이 말했다.

"거 참 희한한 일이군요, 평생 말 장사를 해 왔지만

이런 말은 처음 보는 군요, 한번 타 봐도 좋겠지요?."

허락을 받은 말 장사가 말에 올라탄 후,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니 가기 시작 했다,

다시 한 번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니 더 빨리 달리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타나 기절초풍, 대경실색'

"알렐루야, 알렐루야!"고함을 치니 아슬아슬 하게 멈춰 섰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했더니

말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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