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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8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3 조회수381 추천수1 반대(0)

지난 11일에 성소후원회 회원들을 위한 하루 피정이 있었습니다. 강의는 전주교구 가정사목국장께서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가정, 신앙, 성소, 신앙인의 길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가정은 모든 성소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사제성소, 수도성소, 혼인성소가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 그와 같은 성소가 자라기 위해서는 신앙이라는 토양이 비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신부님의 강의를 요약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잠시 나의 이야기를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깨달음에는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흙탕물은 흔들면 계속 흙탕물이 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흙탕물이 맑은 물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함께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 기억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가족들이 초를 켜고 주님 앞에 멈추어서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저를 영적으로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적당한 시간에 잠시 쉬어 가듯이 신앙인의 가정은 주님 앞에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세상의 것들로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니 참 좋더라!’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굳이 세상의 것들로 채우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품을 소유하려 합니다. 더 좋은 것들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화려한 집은 화목한 가정을 만들지 못합니다. 명품 가방이 나를 성당에로 이끄는 것도 아닙니다. 비싼 침대가 단잠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임을 알 수 있다면, 우리가 더불어 만나는 모든 이웃들이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임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낼 수 있고, 진흙 탕 속에서도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으며,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 예전 보다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상대적인 빈곤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도 크기와 헌금, 신자의 숫자를 가지고 비교를 하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본당에 하느님을 믿는 신앙 공동체가 있는 것입니다. 꽃들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꽃들이 다른 꽃들과 비교해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낙담하고,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서울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에서 3년 동안 지냈습니다. 다른 성당들과 비교를 했을 때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교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 성당에서 즐겁게 지내면서 즐거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그 모든 것도 함부로 하시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적성 성당에서의 시간은 제게는 큰 축복이고, 은총이었습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거짓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교황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행복을 갖지는 못 했습니다. 저격을 받아서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습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교황님께서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으로 사셨고, 신앙인으로 하느님께로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아닙니다. 돈은 삶을 편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건강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아닙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사는데 약간의 불편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사는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행복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은 가치와 의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도 행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얻어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몸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가치와 기준이 있습니다. 남을 도울 줄 알고,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자신을 낮출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죄가 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가치와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3가지 유혹을 받았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 세상의 권력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치와 판단의 기준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이 신앙인의 가정입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사제성소, 수도성소, 혼인성소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신앙인의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나의 영혼이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몸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음식을 먹는 것만큼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나의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세상은 은총의 바다입니다. 그런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넘어서면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셔지고 깨어지지 않는 씨앗은 결코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결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인은 신앙이 액세서리와 같습니다. 필요하면 찾고 필요 없으면 서랍에 넣어두는 액세서리와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0년 동안 독방에서 갇혀 지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고, 죽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방의 벽에 십자가를 하나 그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감옥의 작은 독방이 마치 편안한 호텔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30년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희망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삶의 의미였습니다. 출소해서 아들을 보니 아들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아들이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이니? 그러자 아들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거 요즘 유행하는 십자가입니다.’ 종교인은 자신의 편리와 자신의 뜻에 따라서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고, 그러기에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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