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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16일(수) 聖女 마르가리타 알라코크 님..등♥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5 조회수517 추천수0 반대(0) 신고


 

10월16일(수) 음9/12
聖女 마르가리타 알라코크 님..등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0.16)

성인명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et Mary Alacoque)
축일 10월 16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환시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647-1690년
같은이름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et Mary Alacoque
 
 
 
 

 

클로드 알라코크와 필리베르트 라멩의 딸인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Margarita Maria Alacoque)
1647년 6월 22일 프랑스 샤롤레 지방 베로브르의 로트쿠르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8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자
샤롤레의 성녀 클라라(Clara) 수녀회의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러나 15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은 류머티즘 열로 인하여 자리에 누워서 지냈는데,
어릴 때부터 성체께 대한 신심은 남달리 뛰어났다.
그녀는 결혼을 거절하고 1671년 6월 20일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 이듬해 11월 6일 ‘마르가리타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서약을 하였다.
그녀는 모범적인 수녀였으나 유머 없는 수녀로 통했던 것 같다.
그녀는 1673년부터 1675년 사이에 그리스도의 환시를 4번이나 경험하였다.




이러한 환시에서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당신의 성심께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알렸고,
특별히 첫 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 밤에 성시간을 갖고 구속사업에 참여하라는 신심을
그녀에게 교육시켰으며, 예수 성심 축일의 제정을 요구하셨다.
그녀는 자신이 환시 중에 받은 교육을 따르려는 노력 중에
장상으로부터 수많은 퇴짜를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온갖 장애를 극복하였으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현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신의 수녀회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Claude de la Colombiere, 2월 15일) 신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콜롱비에르 신부는 파레이르모니알의 예수회 원장이었는데,
그는 마르가리타의 환시가 올바르다고 선언하였다.
1684년 멀랭 수녀가 원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수도원 내의 반대도 종식되었으며,
후일 그녀는 수련장이 되었다.
1686년 초에는 수녀원에서 예수 성심 축일을 거행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2년 후에는 예수 성심께 봉헌된 경당이 수녀원 뜰에 세워졌고,
곧이어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는 관습이
전세계의 성모 방문 수녀회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마르가리타 마리아는 1690년 10월 17일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1864년 9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92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마르가리타와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 8월 19일)
그리고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는 ‘성심의 성인들’로 불린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은
1765년에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선포되었으니,
그녀의 사후 75년 만의 일이었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첫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에 성시간을 가질 것

그리고 예수 성심 축일을 지키라는 주님의 뚯을 전하신 님

 

주님께서 얼마나 외로우시길래

우리에게 첫 금요일과 목요 성체조배를 부탁하셨을까?


성녀 마르가리타 알라코크 님이시여,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
!...아멘+

 

 

 

 

 

 


 

 


 

제라르도 마젤라(10.16)

성인명 제라르도 마젤라(Gerard Majella)
축일 10월 1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726-1755년
같은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성 제라르도 마젤라(Gerardus Majella)


 

 

 
 
이탈리아 남부의 무로(Muro)에서 태어난
성 게라르두스 마젤라(Gerardus Majella, 또는 제라르도)
부친이 사망하자 양복공의 도제로 들어갔다.
그러나 하느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려는 열정으로
카푸친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거절당한 후,
라체도니아(Lacedonia)의 주교관에서 일꾼으로 일하였다.
1745년 그곳의 주교가 서거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양복점을 열었다.
그 후 그는 174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뜻을 이루게 되었는데,
구속주회의 평수사로서 입회를 허가받은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1752년에 구속주회의 설립자인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
(Alfonsus Maria de Liguori, 8월 1일)에 의해 수도서원을 발하였다.
수도원에서도 그는 양복 일을 하면서 병자들을 돌보았는데,
특히 몇 가지 초자연적 은혜가 크게 돋보였다.
예를 들면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나는 일, 예언, 탈혼, 환시
그리고 천상적인 지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녀들의 몇몇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도 활약하였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의 성덕과 애덕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754년 그는 임신 중인 네리아 카기아노(Neria Caggiano)라는 여성으로부터
자신과 불미스런 관계가 있다고 고발되었으나,
한 마디의 변명도 없이 그 모든 굴욕을 달갑게 안내하였다.
후일 그녀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하였다.
그 후 성 게라르두스 마젤라는 나폴리(Napoli)로 파견되었으나
그를 만나려는 방문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자,
몇 달 후 카포셀레(Caposele)로 가서 그곳의 문지기로 봉사하면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
는 1904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기 출산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

 

 

  


치욕적인 누명을 쓰고도 변명하지 않았으며

예언 , 탈혼, 환시 등 초자연적 은혜로 가득하셨던
양복공 수사 성 제랄드 님이시여

지복 직관의 천상 복락 가운데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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