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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또 다른 현대판 바리사이/신앙의 해[32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6 조회수436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인천 교구 답동 성당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중성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게다. 심리학에서 말하듯, 모태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두려움이 각인된단다. 아기의 무의식 속에 자신이 내쳐질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는다. 이게 아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 한다. 그래서 본디의 자기 모습이 아닌 게 무의식적인 자기로 각인이 되어 점점 자신의 진정성을 잃어 가는 가 보다.

가끔씩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한다, 믿음의 길을 쉽게 가는 방법은 없겠냐는 거다. 성당에 안 가자니 그렇고, 가자니 재미없단다. 기쁨이어야 할 믿음이 멍에가 된단다. 대부분의 경우 끌려가는 신앙이기에 그렇다. 물질의 십일조 못지않게 사랑의 십일조도 중요하다. 그러니 하루 중의 몇 시간은 떼어 놓자. 일주일에 하루는 주님 시간으로 남기자. 꼭 가야 할 곳이라면 미사 후로 하자. 시간의 십일조도 중요하니까. 이런 ‘앞서 가는 믿음’으로 바꾸면 어떨까?  

“불행하여라, 바리사이들아! 너희는 십일조를 내면서,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윗자리와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짐만을 지워 놓고, 정작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2-46 요약)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은 약 육천 명이었다나. 그들이 오늘날의 유다교를 있게 한 장본인들이다. 바리사이의 어원은 ‘분리하다’에서 유래되었다. 실제 그들은 자신들을 분리시키고자 애를 썼다. 첫째는 율법에서 말하는 부정함에서, 둘째는 율법을 잘 모르는 대중으로부터 분리되려고 노력하였다. 왜 그랬을까?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지킬수록 그만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따라서 그들은 율법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율법 준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일반 대중과 만나는 것까지도 꺼렸다. 그러나 그들의 열정은 상당히 인정받았다. 바오로 사도 역시 회심 전에는 바리사이파에 속한 율법 교사였다. 아무튼 그들은 법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정작 하느님의 사랑에는 소홀함을 드러냈다. 사랑을 강조한 율법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였던 거다.  

누구나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힘이 실리지 않는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기에. 교회 일은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봉사자가 되어야 할 게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관리하기를 좋아하는 어쩜 또 다른 현대판 바리사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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