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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승정 신부님의 성서백주간 2/ 제20회 (전체)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7 조회수642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리고 여기서 고센 땅에 관한 것을 얘기하면서 * 탈출 8,18: "그러나 그날에 나는

내 백성이 사는 고센 땅만은 따로 구분하여, 그곳에는 등에가 없게 하겠다. 이는

나 주님이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등에가 없게 하겠다. 이는 나 주님이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나 야훼가 그 땅의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네가 알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고센 

땅만은 따로 구분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거는

그렇다면 그 땅은 어떤 땅일까요? 이집트일까요? 아니면 고센 땅일까요?

 

여기서 사실은 학자들의 의견이 둘로 확 나뉩니다. 저는 그냥 우리가 문법적으로

충실하게 본다면은 여기서 그 땅은 고센인 거 같습니다. "고센 땅의 가운데에 있다

는 것을 네가 알도록 하기 위하여." 하지마는 어떻게 제가 항상 옳겠어요? 다르게

보는 그와 같은.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

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튼 조금 애매합니다.

"내가, 야훼가 이 땅에 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저는 고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다음에 또 재미있습니다.

 

탈출 8,19: 나는 이렇게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둘 터인데, 그

                표징이 내일 일어날 것이다.

 

구분과 구별. 계속해서 비슷한 개념이지만 다른 내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구별하다라는 건데 영어로 얘기하자면은 distinction 아니면 separation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명사는 여기서 구별을 한다해서 명사가 사용되는데요.

이 명사는 구약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명사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111,9: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보내시고 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다.

 

* 시편 130,7: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 이사 50,2: 내가 왔을 때 왜 아무도 없었느냐? 내가 불렀을 때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느냐? 내 손이 너무 짧아 구해 낼 수 없다는 말이냐?  힘이 없어 구원할 수가

없다는 말이냐? 보라, 나는 호령 한마디도 바다를 말리고 강들을 광야로 만든다.

물고기들은 물이 없어 썩어가고 목말라 죽어간다.

 

구원, 구별과 같은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구별한다는 그와 같은 개념으로

예언서는 이스라엘의 시문학 가운데에서는 특별히 구원 또는 구속의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부분한다. 여기서 구별한다라는 두 단어가 비슷한

개념으로 이렇게 쓰였는데 하지만 둘 다 구약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앞서서도 우리가 개구리 떼에서 모세가 파라오에게 그러면 언제 이거를 

없애 주면 되겠습니까? 그랬을 때 어떤 시간이 지정이 되지요?

예, 내일이라는 시간이 지정이 됩니다.

 

* 탈출 8,5-6: 그러자 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하였다. " 개구리들이 임금님과 궁궐에서

물러나 나일 강에만 남아 있도록, 임금님과 백성을 위하여 언제  기도해야할지 저에게

분부만 내리십시오. 파라오가 "내일이다."하고 대답하자, 모세가 말하였다. "임금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는 주 저희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여기서 내일이라는 시간이 지정이 되다가 그리고 이것이 계속 반복하다가 언제가

되면 즉시로 바뀔까요? 나중에 우박을 내리는 그런 재앙과 정말 중요한 것은 열 번째

재앙에서는 즉시 떠나라라는 시간적으로 더 긴박한 그와 같은 것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전반부에서는 계속해서 내일, 내일, 내일, 뭐 이와 같이 하루 정도 여유가 있는 그런

개념들이 후반부에 가서는 굉장히 급박한 어느 정도로 급박합니까?

 

예, 허리에 뭐 이렇게 띠를 묶고 뭐 지팡이를 들고 밥을 먹고 그냥 동이 트기 전에

바로 떠나야 되는 그와 같은 급박함이 나중에도 있는데 여기서는 내일, 내일, 내일

이런 어떤 시간적인 그런 간격을 우리가 만날 수가 있습니다.

 

탈출 8,20: 주님께서는 그대로 하셨다. 엄청난 등에 떼가 파라오의 궁궐과 그 신하들

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이집트의 온 나라의 땅이 등에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지미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대로 하셨다." 따라서 여기서는 모세나 아론이 어떤

액션을 취합니까? 안 취합니다. 하느님이 말하고 하느님이 그대로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냥 말만 전할 뿐입니다. 야훼는 그대로 하고 그러자 엄청난 등에 떼가

등장합니다. 엄청난 등에 떼가.

 

재미 있는 것은 등에 떼는 '아롭'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여기서 등장하는 히브리 말은

'아롭 카벳'이라는 표현인데 엄청난 등에 뗀데 이 '카벳'이라는 말은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이럴 때도 카벳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모세가

야훼 하느님께 이렇게 말하지요? "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그랬을 때도

카벳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따라서 본래의 뜻은 무겁다는 뜻입니다. "나는 입도 무겁고 혀도 무겁습니다. 그래서

잘 안 떨어집니다." 그때도 카벳이라는 단어가 쓰이고요. 또는 파라오의 심장이 완강

해져. 앞으로도 이제 완강하다라는 단어가 등장할텐데요. 여기서 완강하다는 표현도

카벳이라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우리 말로는 각각 다른 표현으로 등장하는 동일한 단어의 그런 다양한 의미의

사용에 관해서 우리들이 약간 시선을 놓칠 수가 있는데요.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라면

어, 재미있다. 아, 모세의 입도 무겁고 파라오의 심장도 무겁고 그리고 여기서는 등에

떼도 무겁네.

 

따라서 누구의 무거움과 누구의 무거움이 있습니까? 모세의 입이 무겁다는 거는

모세의 무거움입니다. 파라오의 무거움입니다. 등에 떼가 무거운 거는 그거는 야훼의

무거움입니다. 각각의 무거움들이 있는데 누구의 무거움들이 결국 가장 무겁게

이야기 스토리 전체를 통해서 마지막에 최고의 금메달을 따느냐?라는 대결 구도,

경쟁 관계에 관해서 우리들이 좀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예,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야훼께서 그대로 하였다. 엄청난 등에 떼가

온 등에 떼가 파라오의 궁전가 그 신하들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집들로 날아들었다.

이집트의 온 나라의 땅이 등에 때문에 페허가 되었다.

 

조금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번역할 수 있냐하면,

엄청난 등에 떼가 파라오의 집과 그의 신하들의 집과 이집트의 온 땅 안으로 왔고.

따라서 파라오의 집, 신하들의 집, 이집트의 온 땅 그리고 그 땅이 등에 떼 앞에서

황폐해졌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파라오의 집, 신하들의

집, 이집트의 온 땅. 그렇게 보는 것도 역시 가능합니다.

 

여기서 황폐해지다라는 단어도 재미있습니다.

황폐해지다라는 단어가 탈출 12장 가서 보면 또 등장합니다. 12장 13절 마지막에

10번째 재앙입니다. 맏아들과 맏배를 치는 그와 같은 재앙입니다.

 

* 탈출 3,13: 너희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황폐해졌다는 거는 어떤 뜻입니까? 멸망했다는 겁니다. 

멸망했다는 거는 그냥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완전히 더 이상 새롭게 

시작할 수 없는 생명력을 잃은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같은 의미로 다음과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패샤'. 거르고 지나간다라는 그 파스카의 그런 의미에 정확하게 부합니다.

* 탈출 12,23: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러 지나시다가"

그 피를 안 바른, 양을 죽여서 피를 상인방과 문설주에 안 바를 경우에는 그 집에

들어가서 맏아들을 죽이잖아요.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피를 보시면 그 문은

거르고 자나가시고 파괴자가 너희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 파괴자가 여시서 말하는 황폐하게 한다. 또는 여기서 번역한 멸망한다라는 것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재생할 수 없는,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또 그렇게 만드는 파괴자의 존재에 관해서 탈출기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 여기서도

같은 말씀을 제가 드립니다마는 그런 언어의 유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 21절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요청을 수락합니다.

* 탈출 8,21: 그러자 파라오아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였다. "가거라. 그러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들려라."

 

따라서 이집트를 떠나도 좋다는 겁니까? 떠나지 말라는 겁니까? 떠나지 말라.

뭐만 허락하는 겁니까? 제사는 드려라. 그런데 이집트의 그런 영향권은 벗어나지

마라. 이집트 땅 안에서 그와 같은 것을 해야 된다. 그러자 모세가 파라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 탈출 8,22: 모세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을 이집트인들이 역겨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이

역겨워하는 것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희가 제물로 바치면, 그들이 저희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습니까? 직역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직역: 그렇게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우리들의 엘로힘 야훼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 이집트의 역겨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그들의 눈 앞에서 이집트의

역겨움을 제물로 바친다면, 그들이 우리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이집트의 역겨움이라는 말은 여러분들 문학공부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러번 이런 것들을 접하시겠지마는 우리 말도 그렇고 서양 말도 그렇고 이 소유격의

의미가 때로는 주어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때로는 목적어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역겨움이라는 말은 이집트인들이 역겹게 생각하는 것이

라는 의미도 있고 반면에 이집트인들이 하는 역겨운 짓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이집트인들이 역겹게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이스라엘의 제사에서는 어떤 것들을 제물로 바치지요?

소나 양이나 그런 동물들을 제물로 바치잖아요. 그런데 이집트인들에게는 때때로

그와 같은 동물들이 신성한 동물들입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신들을 보면 이집트의

벽화 같은 것들을 보면은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매, 소 지난 번에도 심지어 개구리

까지 있었잖아요.

 

그런 어떤 동물들이나 곤충들 이런 거를 신격화 시키는 아니면 그런 어떤 동물들이나

곤충들 이런 거를 신격화 시키는 아니면 고양이나 뭐 이런 거를 신격화 시키는 그와

같은 이집트의 기본적인 종교적인 특성인데 그 동물들을 잡아서 죽인다면 이집트인

들은 그것을 보고 좋아할까요? 화를 낼까요? 화를 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겨움이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보고 피하는 그 정도의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역겨움이라는 것은 그를 정말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앞에서도 왜

조장들이 모세에게 와서 뭐라고 그러지요? 당신들 때문에 이집트인들에게 우리들이

역겨움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쓰는 것처럼 이거는 굉장한 어떤 역겨움이

이라기보다는 우리 말 표현에 더 가까운 거는 어떤 증오 같은 그와 같은 표현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여기서 제사를 지냈다간 이집트인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라는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겨움은 따라서 종교적인

모독과 관계가 돼 있는데 그런 종교적인 모독에 따른 벌은 예외 없이 구약의 율법

안에서도 누군가가 야훼에게 역겨움이 되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로 던져 죽여야 합니다. 아니면 추방해야 됩니다. 공동체로부터.

 

* 탈출 19,13: 그런 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말고, 돌이나 활에 맞아 죽게 해야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숫양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거든,

백성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라.

 

* 신명13,11: 너희는 돌을 던져 그를 죽여야 한다. 그는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에게서 너희를 떼어 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 신명 17,5: 너희는 그 악한 짓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 1열왕 21,13-15: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 신명 17,1-5: 어떤 결합이든 흠이 있는 소나 양을 주 너희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역겨워하신다.

 

너희 가운데에서, 곧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성들 가운데 한 곳에서,

남자든 여자든 주 너희 하느님의 계약을 어기고 그분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를 경우, 내가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해나 달이나 하늘의 모든 군대와 같은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것들을 경배할 경우,

 

그 일을 너희가 듣고 알게 되면,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에서 그런 역겨운 짓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너희는 그 악한 짓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어떤 결합이든 흠이 있는 소나 양을 주 너희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제물은 정성껏 바쳐야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역겨워하신다." 쭉 그런 역겨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 다음에 마지막에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에서 그런 역겨운 짓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너희는

악한 짓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성문이라는 거는 재판하는 장소입니다. 재판하는 곳으로 끌어내어 거기서 일단

재판을 하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조금은 좀 끔찍한 그와 같은 율법입니다. 그런 역겨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율법이 역으로 이집트에 반영이 돼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제사는 지내면 이집트인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져 죽일 게  아닙니까?

 

자, 그러면서 23절: "주 저희 하느님께서", 야훼 우리들의 엘로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광야로 사흘길을 걸어가 그분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흘 길. 사흘이

라는 것을 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파라오가 그것을 다시 허락합니다.

 

*탈출 8,24: 그러자 파라오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내보낼 터이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라. 다만 너무 멀리 가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다오."

 

파라오 가지가 기도하면 되는데 자기는 안 해요. 왜냐하면 자기가 섬기는 신이

아니니까 너희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다오. 여기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그런 유다의

역사가 있습니다. 유다가 나중에 유배에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페르시아 왕국의, 또는 헬레니스 제국의, 그리고 로마 제국의.

 

그럴 때마다 각 제국의 그 통치자들은 가지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정복한 다른 지역에는 그런 각각의 신전마다 자기 모양을 본딴 그런 신상들을 거기

다가 갖다 놓습니다. 따라서 제관들은 예를 들어 지금 터키 지역에 있는 그곳의 뭐

어느 성전이 있고 제관이 있었다면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선 자기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에 제국의 황제에게도, 신격화된 황제

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들 그 신격화된 아주 대표적인 그 특징이

뭐냐하면 고대 동전에 자기의 모습을 그려 놓는 거는 자기를 신격화하는 겁니다.

동전에 자신의 모습을 집어 넣었다라는 거는 자기를 신격화하는 겁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그거를 받아들였겠습니까? 안 받아들였겠습니까? 안 받아들입니다.

 

나중에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안티오쿠스 4세라는

그런 셀류코스 왕조의 그런 제국주의자가 자기 모습을 본딴 그런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다 갖다 놓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성전을 모독했고 성전이 이제 완전히

불결해졌다. 너 때문에. 그와 같은 여러 가지 때문에 유다인들이 종교적인 그런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그런 출발점이 됩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을 그렇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조금 이거를 외교

적으로 풀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유다인들의 그런 점을 인정합니다. 특히 로마의

황제들은.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 약간 완화 정책을 펴냐하면, 너희들은 나에게

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희가 너희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나를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달라. 이 정도로 완화를 합니다.

 

여기서도 파라오가 비슷한 것을 하는 겁니다. 너희는 가서 제사를 드리는데 제사

드리면서 나를 위해서도 조금 기도해 달라.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라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재미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대답 합니다.

 

우리가 봐야 될 것은 다음과 같은 부사입니다. '다만'. 계속해서 언어의 유희가

벌어지는 겁니다. 파라오는 모세에게 뭐라고 그럽니까? '다만' 멀리 가지는 마라.

 

* 탈출 8,25: 모세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제가 임금님에게서 물러가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내일이면 파라오와 신하들과 백성에게서 등에 떼가 물러날 것입

니다. 다만 파라오께서 다시 저희를 속이시고 이 백성을 내보내시지 않아, 주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뭐라고 그럽니까? '다만' 파라오께서 다시 저희를 속이시고 이

백성을 내보지시지 않아, 주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1장에서 라반이 야곱을 속였을 때 속인다라는 요 같은 동사가 등장하고

 

* 창세 31,7: 그런데도 당신네 아버지는 나를 속이면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바꿔

쳤소.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셨소.

 

판관기 16장에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신을 놀렸라고 하는 경우에 '속였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 판관 16,10: 들릴라가 말하였다. "이봐요. 당신은 나를 놀렸어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무엇으로 묶으면 되는지 이제 말해 주세요."

* 판관 16,13: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놀리고 나한테

저짓말을 하고 있군요. 무엇으로 묶으면 되는지 말해 주세요."

* 판관 16,15: 들릴라가 또 삼손에게 말하였다. "마음은 내 곁에 있지도 않으면서

당신은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렇게 나를 세 번이나 놀리면서

당신의 그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해 주지 않는군요."

 

따라서 여기서 '속인다'라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런 얘기를 해 보면은

우리 말로도 그런 거가 있잖아요. "너, 나 속여 먹었어?" 약간 좀 놀린다. 조롱한다.

그런 뜻이 있잖아요. 아마 그런 비슷한 어감으로 이것을. 따라서 파라오가 야훼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라는 그와 같은 뜻으로 이 속이지 말라는 그런 모세의 말을

알아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 탈출 8,28: 그러나 파라오는 이번에도 마음이 완강해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직역하자면 "그러나 파라오는 이번에도, 우리 말 성경에서는 역시를 생략했습니다.

번역하지 않으셨는데 직역하자면, "그러나 파라오의 심장은 역시 이번에도 무거워

져서 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조금 더 앞의 내용을 되짚어 보자면, 이 등에 떼를 얘기하는 '아롭'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들은 '침파리'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들은 '날개 달린 개미'라고 번역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기에 파리가 더해져' 뭐 하여튼 전체

적인 상황은 여러 가지 해충들의 어떤 떼인데 모기랑 등에랑 어떤 것이 더 파괴의

강도가 강하겠습니까? 등에가 더 강한 겁니다. 모기보다 분명히.

 

먼지에서 만들어진 모기보다 등에 떼는 분명히 크기가 더 큰 거 같고 또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 피해도 더 클 거 같습니다. 따라서 모기 떼일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좀 피하고 귀찮아 하고 뭐 이정도의 경우이지마는 등에 떼의 경우에는 이집트가

황폐해졌다라는 어떤 재앙의 강도가 점점점점. 비슷한 해충에 관한 것이지마는

더 커지는 그와 같은 것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27절에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백성에게서 물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등에 떼가. 이와 같은 표현이 앞으로도 등장합니다. 앞으로 메뚜기 떼가 나와서

메뚜기 떼를 야훼 하느님이 재앙을 끝낼 때 메뚜기 떼를 몰고 가서 갈대 바다에

쳐넣으니. 이것은 야훼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냥 대부분 죽었다. 또는 99%

죽었다. 이런 것이 아니라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같은 표현이 14장에 등장합니다.

* 탈출 14,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

였다.

 

예, 등에 떼라고 얘기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풍뎅이를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이집트의 신들 중에 풍뎅이로 형상화되는, 왜 신을 풍뎅이로 형상화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몬 라'와 같은 신이 있었고 네째 재앙은 그에 대한 어떤

신학화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게 아몬 라에 관한 표현인데요. 풍뎅이로 완전히 신학화  하긴 해 놨지마는 손에

들고 있는 게 풍뎅이입니다. 풍뎅이를 들고 다른 신과 또는 인간과 여기 아마 다른

신 같애요. 다른 신과 이렇게 함께 서 있고 만나는 이런 아몬 라의 검정 풍뎅이

렉스트랍을 이 그림 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요 그림이 어떤 의미일까 좀 설명할려고 시도해 봤는데 상형문자를 배운지가

하도 오래 돼가지고 잘 못읽겠다라구요. 다음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면 해석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여기서 말하는 고센 지방이라는 지명은 창세기에서도 나옵니다. 야곱이 자기

자손들을 데리고 요셉에게 이집트로 왔을 때 파라오가 그들을 고센 지방에 머물게

했다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욥기 7장 5절에서도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나옵니다.

* 욥 7,5: 내 살갗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그런데 여기 욥기 7장 5절에서 나오는 '고쉬'라는 단어는 아마도 흙이라는 뜻일겁

다. 따라서 고센 지방은 조금 비옥한 땅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집트의 델타지역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한

그와 같은 지역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호수아기에서도 보면은

고센이라는 지역이 등장합니다.

 

* 여호 10,41: 여호수아는 또 카데스 바르네아에서 가자까지, 그리고 고센의 온

                    땅과 기브온까지 모조리 쳤다.

 

* 여호 11,16: 여호수아는 이 모든 땅, 곧 산악 지방, 온 네겝 땅, 온 고센 땅,

                    평원지대, 아라바, 이스라엘 산악 지방과 그 평원지대를 정복하였다.

 

* 여호 15,51: 고센, 홀론, 길로, 이렇게 열한 성읍과 거기에  딸린 촌락들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기에 나오는 고센 지역은 전부 다 어떤 유다 지역에 있는 또는

유다 남쪽에 위치한 네겝과 인접한 지역을 지칭하는 거 같애요. 따라서 동일한

명칭이 서로 다는 지역을 이야기 된 것이지 그것을 같은 지역으로 생각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몇 전문가들은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투메이랏 계곡 와디 투메이랏 근처가 고센

지방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마는 그것도 역시 가설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 나중

에 이집트 지역 여행할 기회가 있으시면 가이드한테 와디 투메이랏 한번 가보자

하시면은 가이드가 여러분들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 쳐다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이집트의 여러 신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런 동물의 모습으로 형상화됩니다.

프타라는 신은 황소의 모습으로, 멤피스의 거룩한 황소 그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헵이라는 신도 있고, 숫양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크눔이라는 신도 있고, 암소의 모습

으로 형상화된 하토르라는 그와 같은 신들도 있습니다.

 

이집트의 신화적 체계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뭐 따로 책 한권을 쓸 정도로

굉장히 복잡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설명드리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고

뭐 이정도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다음으로는 가축병, 다섯 번째 재앙 가축병에 대한 그와 같은 재앙입니다.

히브리 말로 데베르(dever, 가축병)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병인데 '흑사병'

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가축에 걸리는 그와 같은 병입니다.

 

예, 첫 번째 9장 1절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같은 명령이 7,26 그리고 10,1에서도 등장합니다. "파라오에게 가라."

여러분들 표를 보시면은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page1.

0 큰 뱀

1 피

2 개구리들

3 모기들

4 등에 떼

5 가축병

6 종기

7 우박

8 메뚜기 떼

9 어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침에 파라오에게 가거라. 그가 물가로 나갈 터이니, 나일 강 가에 서 있다가 그를 만나라.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 앞에 나서라. 그가 물가로 나오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파라오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일러라.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 앞에 나서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파라오에게 가거라.

 

 * 탈출 9,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일러라.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 탈출 7,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 탈출 10,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거라.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든 것은 나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에 나의 표징들을

일으키려는 것이고,

 

따라서 둘째, 다섯째, 여덟째 재앙에서 공통적으로 그와 같은 명령만 등장하는

겁니다. 파라오에 대한 기본적인 그런 파견만 등장하는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파라오에게 가서 다음 문장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이거를 우리가 사자형식(使者形式)이라는 고정된 표현이라고 얘기하는데 이것도

역시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슴을 전한다라고 해서 한자로 이렇게 씁니다.

使者形式. 파견된 사람들의 어떤 형식이다. "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히브리 말로

이 정도는 기억해 두셔야 될 것 같아서 여기다 그냥 써 놨습니다.

 

* 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ko ’amar ’adonay 코 아마르 아도나이

 הוהי רמא הכ  

여러분들 이제 히브리 말 하실 줄 아는 겁니다. ^^*~~~ 유다인들 만나서

"코 아마르 아도나이." 그러면 유다인들이 깜짝 놀랠꺼예요.

어? 한국에서 예언자가 왔나보다. ^*~~~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그 예언자 형식이 우리 전례 안에서도 담겨 있습니다.

예, 독서가 다 끝나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얘기 했을 때 거기에 담겨 있는

하나의 예언 형식이 있습니다. 이거는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라는 그와 같은 뜻입니다.

 

9장1절에서는 파라오에게 가서 "코 아마르 아도나이." 야훼가 이렇게 얘기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야훼라는 말을 한번 더 설명합니다. 히브리인들의 하느님, 즉 히브리인

들의 엘로힘인 야훼가. 따라서 우리 말로 직역하자면 정확히 이건 이런 뉘앙스입니다.

 

"이집트에 신이 있듯이 히브리인들도 신이 있는데 그 히브리인들을 보호하고 아끼는

그 신인 야훼가 너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얘기했다." 라는 그와 같은 어감입니다.

 

자,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지요? 그에게 일러라. "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네가 그들을 내보내기를 거부하고 계속 그들을 붙잡아 둔다면, 여기서

우리가 밑줄칠 부분은 '계속'이라는 부분입니다. 니가 한번 두번이 아니라 '계속'.

따라서 하느님의 인내심이 조금씩 분노 게이지가 차고 있는 겁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폭팔하는 겁니다.

 

계속 네가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손이 들에 있는 너의 짐짐승들,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을 지독한 흑사병으로 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짐승이라는 것은

'가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손이, 이제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이 너의 가축들을 칠 것이다. 어떻게? 지독한 흑사병으로.

 

여기서 '지독한'이라고 얘기한 거는 여러분들 기억하시지요? 앞서 얘기한 '무겁다'

라는 것과 같은 형용사입니다. 따라서 '지독한, 무거운' 흑사병, '무거운 등에 떼'

그 다음에 또 '무거운 파라오의 심장', '무거운 모세의 입' 다 같은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흑사병, 도대체 어떤 병일까?

 

뭐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중세 때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페스트'와 같은 병인지

또는 어떤 사람은 '탄저병(anthracnose)'이 아마 여기서 얘기된 것이 아닐 것이냐?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나오는 지금 등장하지 않은 나중에 나오는 종기에

관한 것도 이 탄저병과 관련된 것이 아닐 것이냐?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아무튼 가축들을 병으로 죽게 하겠다. 이게 무서운거죠.

 

몇 년 전에 저희들이 소나 말을 그냥 살처분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게 무슨 병이었죠?

그게 구제역이었나요? 그 다음에 조류 독감 이래가지고 공포에 떤 적이 있엇지요?

그와 같은 21세기에도 우리들이 겪고 있는 그와 같은 공포, 과거의 시대에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었을지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탈출 9,4: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의 집짐승과 이집트의 짐짐승을 구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것은 하나도 죽지 않게 할 것이다.

 

네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다섯째 재앙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구분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것들은 죽지 않게 될 것이다. 등에 떼에서도 가축들이

괜찮았으니까 가축병에 있어서도 가축들은 지켜지는 그와 같은 어떤 일관성을

저희들이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것은 어떤 겁니까? 하나도 죽지 않게 될 것이다.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 여기서는 하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는 어떤 그런 야훼 하느님의 권능에 관해

서 우리들이 이 대목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5절. 좀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야훼가 내일 이땅에서 이 일을

이룰 것이다." 하시며 때를 정하셨다. 이 좀 이상해요. 야훼가 얘기하면서 야훼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좀 이상하죠? 여러분들이 누구에게 얘기하면서 뭐 자기 이름을

얘기하면서 누가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내가 이렇게 얘기할텐데 자신에

관해서 3인칭으로 얘기합니다. 이건 왜 그럴까? 좀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조금

이렇게 좀 갈리게 됩니다.

 

아무튼 야훼가 "내일 이 땅에서" 다시 한번 내일이 등장합니다. 하시면서 중요한

거는 "때를 정하셨다."라고 얘기하는데요. "때" 히브리 말로 '모엣'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때를 정하셨다. 여러분들께 제가 옛날에 설명을 하면서 그런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스 말 개념으로 시간에 관한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첫 번째는 양적인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라는. 따라서 우리가 몇 분 몇 초.

어떤 백미터 선수가 달렸는데 뭐 9초 몇에 달렸다. 그럴 때는 크로노스.

크로메터라는 시계를 씁니다. 크로노스. 양적인 시간입니다.

 

반대로 그리스 말로 '카이로스'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건 어떤 뜻이냐 하면,

"아, 내가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밥 먹을 때가 됐다."

"아, 이렇게 몸에서 열이 나는 걸 보니까 쉴 때가 됐다." 또는 "잠잘 때가 됐다."

 

나중에 지혜 문학으로 가면 어떤 게 있습니까?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고, 살아갈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그런

질적인 개념의 때인데 여기서 말하는 때 '모엣'이라는 개념은 질적인 의미에서의

때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모엣이라는 단어가 창세기 1장 14절에 등장합니다.

* 창세 1,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여기서 우리 말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많은 성경들도 요 모엣이라는 단어가

여기 등장하는데 그거를 '때'로 번역하지 않고 '절기'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저는 요것을 좀 다르게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적인 때, 특히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개념이 조금 히브리 사람들은 히박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것은 우기와 건기

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여기서 말하는 모엣의 개념은 '축제의 때'인 것 같습

니다. 축제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ㄸ라서 지금은 특별한 시간.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느냐? 해와 달로 알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열 번째 재앙을 통해서 보게 될 파스카 축제. 언제입니까?

니산달 15일입니다. 또는 14일 저녁부터 15일로 넘어가는 그와 같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니산달을 뭘로 정합니까? 예, 해와 달을 보고 .

 

춘분에 걸려 있는,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그와 같은 시기에 새로 초승달이

뜨면은 그 때가 니산달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해지는 시기에 초승달이 뜨면

그때가 니산달이예요. 따라서 니산달이 언제 시작하는지 사실은 부정확합니다.

 

예, 어느날 정말로 초승달이 떴는데 뭐 하늘에 구름이 껴서 흐려요. 그러면 그 다음날

이 니산달 초하루가 되어 버려요. 왜냐하면 과거의 사람들은 따로 측정 관측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날을 정하는데. 따라서 춘분에 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해지고 초승달이

언제 뜨는가?로 보게되니까 여기서도 어떤 절기라는 의미를 그런 의미에서의 질적인
때로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 신약에서도 이런 '때'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와 같은

복음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입니다. "이제 때가 다가왔다." 그래서 요한 복음을

'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때',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때'라는 것은 종말론적 시간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구약에서 '축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때, 모엣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고,

신약에서는 '종말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의 '카이로스'라는 때가 중요한데 그

둘 다 공통적으로 양적인 시간이 아니다. 따라서 뭐 이천 몇년 몇월 며칠이 되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라고 이야기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옳지 못한, 조금

뭐라고 그럴까요?  누군가를 속일 의도가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 그렇게 때와 징표들에 관해서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

면서 정해 놓은 때와 그런 징표들이 있다라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들이 생각해 보면

되겠습니다.

 

자, 탈출 9,6: "다음날 야훼는 이 일을 하였다." 라는 것이 가축병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모세와 아론이 어떤 역활을 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말만 전합니다.

말도 전했는지 안 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와 아론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야훼가 직접 합니다.

 

* 탈출 9,6: 이튿날 주님께서 이 말씀대로 하셨다. 이집트의 집짐승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짐승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이집트의 가축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가축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여기서 밑줄을 친다면은 바로 요 대목입니다. 이집트의 집짐승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의 집짐승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그와 같은 대조들.

 

* 탈출 9,7: 그래서 파라오가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이 완강해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여기서도 언어의 유희가 있습니다. 파라오가 사람은 보내죠? 같은 단어입니다.

'보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보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짧은 9장 1절부터 7절

까지의 단락 안에서도 여러 가지 언어의 유희가 함께 있는 겁니다.

 

이집트의 가축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단 한 마리도 죽지 않고,

파라오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지만,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고,

그 가축병은 매우 무겁고, 파라오의 심장도 무거워지고, 완강해지고, 그러면서

전체적인 다섯 번ㅉ 재앙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게 됩니다.

 

예, 지금 재앙 이야기를 계속 읽으면서 굉장히 머리들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완전히 똑같은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내용도 아닌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이 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그와 같은

틀을 보실 수가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혼란스럽지 않으시다면은 그게 이상한 겁니다. ^^*~~~

왜냐하면 제가 혼란스러우니까 ^^*~~~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 가운데서 점점

무엇이 드러나고 있는지, 그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주목하시면서

전체적인 재앙 이야기 마지막 부분을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읽었으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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