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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17 조회수1,056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Woe to you, scholars of the law!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yourselves did not enter
and you stopped those trying to enter.
(Lk.11,52)
 
제1독서 로마 3,21-30ㄱ
복음 루카 11,47-54
 
큰 꿈을 품고 있는 청년이 주님께 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인물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매일 이렇게 기도했고 또한 그러한 인물이 되기 위해 스스로도 열심히 생활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청년이 40대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동안 자신이 한 것을 떠올려보니 세상을 변화시킬 일을 하나도 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도가 헛된 기도였음을 깨닫게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바꿨다고 합니다.

“주님, 저를 먼저 변화시켜 주소서!”

이런 기도를 매일 바치면서 그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하였고, 내 삶 안에서 바꿀 수 있는 작은 부분들을 하나씩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바꾸는 그 노력들이 모아지면서 점차 저절로 이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존재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남을 바뀌게 하리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바로 내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나를 바꾸는 것보다는 남을 바꾸려는 불가능한 일에 더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도 힘들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전해 주지요.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얼마나 큰일을 하느냐?’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 안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존재가 되느냐?’를 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꾸짖고 있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변화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율법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다른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무조건 변화하라고 명령하고 있지요. 정작 자신들은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면서 대접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면서 전혀 변화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이러한 충고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독한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변화되지 않는 이 모습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역사에 기록된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과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해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는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내 자신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불행하여라!”라는 말이 아닌, “행복하여라!”라는 말을 주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습니다.

내게 길일(吉日)을 기다리라고 하지 마십시오. 길일은 바로 오늘입니다(자크 아탈리).

 
물이 흐르는 터널같지요? 사실 밑은 물이 아니라 하얀 비닐봉지랍니다. 실제와 사진은 다릅니다.

 
목표량을 채우자.

사업을 하는 한 사장님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각자의 목표량을 달성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표를 달성하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자신의 멋진 바닷가 별장을 쓰게 해주겠다고 제의했지요. 그러자 한 직원이 물었습니다.

“사장님께서 해변에 별장을 가지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없지. 그렇지만 자네들이 목표를 달성하면 별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네.”

그렇습니다. 직원들이 목표를 달성해주면 사장님께서는 멋진 별장을 가질 수 있게 되겠지요.

하느님께서도 우리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의 목표량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목표량을 채우면 하느님께 이득이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 온전히 우리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즉 우리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을 기억하면서, 바로 내 자신을 위한 우리의 목표량인 사랑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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