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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3년10월21일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1 조회수65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3년10월21일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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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貪慾)이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말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지나침은 이르지 못함과 같다’는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지혜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지나침이 이르지 못함과 ‘같은 것’이 아니라, ‘못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열불급(過劣不及)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 본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는 욕심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좋은 것들도 지나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삶의 법칙을 모를 리 없는 세상 속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욕망에 제어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들이다. 한마디로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치다’는 말의 반대말은 ‘모자라다’ 혹은 ‘이르지 못하다’이다.
그러면 이 두 의미 사이의 중간쯤 되는 뜻을 가진 말은 없을까?

‘알맞다’나 ‘적당하다’라는 말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적당히’라는 표현을 ‘얼추 맞춰서’ 혹은 ‘대충대충’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적당(適當)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들어맞거나 알맞다’라는 뜻이다.
즉 적당하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은 틀림없이 마땅한 이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적당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일 수 있다.

왜 우리는 적당하게 알맞게 살아가기가 힘든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눈에 보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많은 이유들 중에 나름대로 한 가지를 생각해본다.
탐욕은 상처에서 나온다.
모자란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만들어진 상처의 부작용이다.

모자람의 결과는 보통 둘로 나뉘어진다.
열등감과 겸손이다.
열등감은 채워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모자람을 인정한 겸손은 보다 나은 노력과 타인의 모자람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한다.
열등감은 모자람의 이유를 타인의 탓이나 세상의 탓으로 돌리게 하지만,
겸손은 전체적인 답을 찾으려 한다.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상처가 더 이상 삶을 흔들어대지 않게 해야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 하신다.
이는 물질적인 것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경계하라는 말씀이시다.

요즘, 치유라는 아름다운 우리 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방송매체들을 통해서 자주 듣게 된다.
치유보다 힐링이 고급스럽게 들리나보다.
이 역시 하나의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은 상처를 치유하라는 말이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움직임들,
그 움직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자신’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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