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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는 주님과 나눔의 대화/신앙의 해[34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7 조회수479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마산 교구 사봉 공소

훌륭한 문필가이기도 한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서 말한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마침 숲 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별것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걸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그녀는 첫째 날에는 이런 것들을 보고 싶단다.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있게 해 준 이들을 보고 싶다. 오후에는 숲을 산책하며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련다. 저녁이 되어 찬란하고 아름다운 저녁노을까지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날 밤 이 하루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둘이 기도하러 갔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강도짓을, 불의를 저지르는,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과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세리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게다.”(루카 18,9-14 요약)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낮출 줄 모르고 거만하게 공적만을 나열한다. 주님과의 대화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솔직한 삶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높이는 데만 급급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긴말이 필요치 않았던 게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주님의 자비와 은총이니까.

지금 기도하는 두 사람 가운데 우리는 어떤 이의 태도와 닮았을까? 주님은 물론이고 이웃을 업신여기는 이는 결코 의로운 이라 할 수 없다. 자신은 다른 이를 생각해 주지 않으면서, 주님께는 자신을 기억하시길 바라는 건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니까?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다. 대화는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을 낮출 때 가능하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거다. 받아들인다는 건 자신을 비울 때만 가능할 게다. 그래야 나누어지리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주님의 자비와 은총이다. 그러니까 그분께 영광 드리는 게 기도가 아닐까? 따라서 다른 이를 업신여긴다면 의인이라 할 수 있을까? 바리사이는 자만과 우월이라는 벽에 갇혀 기도하였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도 바리사이처럼 기도를 바치지는 않는지 곰곰이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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