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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첫자리에 모셔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7 조회수687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30주일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 18,9-14

 

 

주님을 첫 자리에 모셔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행복하시기 빕니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가 대조적으로 나타나는데 주님께서 무엇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경건주의자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나라를 걱정하면서 자기들이 식민지 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듯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엄격하게 율법과 그 해설 조문을 지켰고 이들의 열심한 삶은 사람들에게 모범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로마에 빌붙어 관직을 유지하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그들에게 상납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동족을 착취하여 부를 쌓고 반역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의 세리는 하느님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속인의 대표 격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세리들 보다는 바리사이들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의 판결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루카18,14).

 

예수님께서는 왜 당시의 상식을 뒤집어 놓는 판결을 내리셨을까요?

 

바리사이의 기도를 보면,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18,11-12).하고 기도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 자랑에, 남을 무시하고 판단하며 자기를 내세웠습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자기만 옳은 줄 믿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과오입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은 교만에서 나오는 범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보고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태5,27)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남을 업신여길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고 ‘의인이다.’ ‘불의한 사람이다’판단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중심, 속마음을 보십니다. 자기를 높이면 남들이 낮아지고, 낮아진 사람들이 또한 그를 또한 끌어내립니다. 자기를 낮추면 남들이 높아지고 높아진 사람들이 그를 더욱 높여 줍니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세상의 어김없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하고 미사참례를 하며, 봉사를 한다고 해도 남을 무시한다면, 흉보고, 험담하며 남을 깎아 내려야 자기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한 아무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허영과 자만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맙니다. 그야말로 ‘잘난 사람이 잘난 척’하면 그야말로 밥맛입니다. 자기만 의인인척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못난 사람이 잘난척하는 것도 꼴불견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어디가 아픕니까? 배가 아프죠. 배가 아파 괴로워하고만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더 넓은 땅을 사야죠. 더 큰 노력과 정성으로 땅을 살 생각은 않고 상대를 흔들어 떨어뜨리려 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존 포엘신부는 말합니다.“힘써 조심할 일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 특히 남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끊어 버려야지 머물게 하거나 입 밖에 내기만 하면 페스트나 마찬가지요, 무서운 독입니다.”교만은 인간을 눈멀게 합니다. 무엇인가를 할 때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되는 줄 믿습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알베리오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고 주신 것을 가지고 인간이 활용하고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18,13)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알았습니다. 자기 민족에게 따돌림 받고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죄를 지어버렸다는 것을! 이제는 무조건 용서를 빌고 은총을 간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마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세리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독서의 말씀처럼 “겸손한 사람의 기도가 구름을 꿰뚫고 하느님께 전달된 것입니다”(집회35,21).

 

하느님 앞에 겸손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겸손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엽니다.” “교만은 버림받은 자의 표시이고, 겸손은 선택된 사람의 표시입니다”(성 그레고리오).“교만은 천사를 악마로 만들었으나 겸손은 인간을 천사로 만들었습니다.”“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말고 하느님을 자랑”(성 아우구스티노).해야 하겠습니다.

 

내 자랑하지 말고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셔야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며 상대를 높여주는 삶을 통해 기뻐하고 주님께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누가 보내준 글입니다.

 

어느 날 묵주에 달린 예수님들이 한자리에 모이셨답니다.

그런데 묵주에 달린 예수님들의 모습과 표정과 건강상태는 다 달라 보였습니다.

 

한 예수님은 늘 차에 매달려 있어 멀미로 얼굴이 노랗고 어지럼증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계셨고,

 

또 한 예수님은 주머니 속에 갇혀있어 오랫동안 먼지와 함께 있다 보니 편도선과 가래로 고생하고 계셨고,

 

또 다른 예수님은 묵주 통에 긴 시간 담겨 있어서 온 몸이 녹슬어 계셨습니다.

 

또  한 예수님은 서랍 속에 다른 물건과 엉켜있는 바람에 제대로 몸을 움직이질  못해 근육마비로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예수님은 팅팅 불어 계셨는데 그 예수님은 주머니 속에 담긴 채 세탁기에 돌려져 온 몸이 불으신 것 입니다.

 

그런데 한 예수님은 얼굴이 뭉그러져 형상조차 알 수 없는데도 왠지 모를 빛을 발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이 예수님은 어느 할머니의 묵주로 늘 매일같이 아주 열심히 기도 하시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하도 매만지는 바람에 얼굴이 다 닳아 형태가 없어졌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묵주의 예수님은 너무도 행복해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묵주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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