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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생명의 길 -열림, 이어짐, 함께함- 2013.10.27 연중 제30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7 조회수36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10.27 연중 제30주일, 집회35,15ㄴ-17.20-22ㄴ 2티모4,6-8.16-18 루카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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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길 -열림, 이어짐, 함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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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입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기적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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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기도 때 시편 한구절도 생각납니다.

‘그 하신 일 놀라워라 주님을 찬미하라.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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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기적을 깨달을 때 저절로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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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는 처음 봤어요.”

아침 산책 중 피정 온 자매님이 서리를 보며 신기해하던 표정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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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농장에서 일하며 겪었던 기적들을 소개합니다.

어제 베네딕도 봉헌회 서울 지구 27명(2기7명, 4기10명, 7기10명)이

헌신적인 노동으로 야콘 수확을 끝냈습니다.

아침에 볼 때 어떻게 수확하나 막막해 보였는데

오후 4시쯤 수확이 끝나 말끔히 정리된 야콘 밭을 보니 저절로 기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봉헌회 회원들에게 다음 같은 요지의 말씀을 드리고 강복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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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봉헌회 회원인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합심하여 말끔히 수확을 끝냈다는 자체가

놀라운 기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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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 후 산뜻하고 깨끗해진 영혼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야콘 밭을 갈아엎을 때 무수히 발견되는 탐스런 야콘 열매들도 기적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밭을 갈아엎을 때 무수히 발견되는 사랑, 희망, 감사, 기쁨 등 은총의 열매들입니다.

또 잠시 만상길 배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은총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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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5년 후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은총이요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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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11일에 요셉 수도원에 부임하여 그해 10월 만상길 작업에 처음 착수했으니

만25년 전 일입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이 베푸신 놀라운 기적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떠오른 어느 예언자적 통찰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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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으로 걸어가는 시선으로 과거의 순간을 쳐다보지 않으려 하며,

게와 같이 뒷걸음하는 시선으로 현재를 파악하고자 합니다.’(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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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와 같이 뒷걸음하는 시선으로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지금 여기 현재를 볼 때 무수한 기적의 현장임을 체험합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기적으로 가득한 놀라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바탕으로 ‘생명의 길’에 대해 체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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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생명의 길은 열림(open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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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닫으면 하느님은 여십니다.

열림의 개방이 생명의 길입니다.

하여 수도원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열려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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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문, 뒷문이 닫힌 불통의 공간은 말 그대로 죽임의 공간입니다.

열림의 소통이 살림의 공간이라면 닫힘의 불통은 죽임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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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야콘 밭에서 비닐을 걷어낼 때의 깨달음 또한 잊지 못합니다.

얼마나 땅이 딱딱한지 삽도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비닐로 덮여 닫혀 있었기에 숨도 못 쉬고 때때로 위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리도 딱딱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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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이치나 마음의 이치나 똑같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불통으로 차단되어 있을 때 우리 마음도 굳어져 딱딱할 것입니다.

마음 역시 소통으로 열려 있을 때 부드러워짐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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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참 대조적입니다.

바리사이가 하느님께 닫힌 모습이라면 세리는 하느님께 활짝 열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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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향해 활짝 마음을 여는 것, 바로 이게 가난이자 겸손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온갖 정신질환 역시 자기를 닫아버림으로 자초한 화입니다.

사람의 죄가 자기를 닫아 버리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은총은 닫힌 문을 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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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의 기도를 보십시오.

이건 소통과 대화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 혼자만의 독백이요 자기 과시입니다.

하나마나 기도입니다.

완전히 자기 안에 갇힌 자기도취의 독백입니다.

반면 세리는 하느님 향해 활짝 열려있는 가난한 자, 겸손한 자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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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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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미사 시작 전의 자비 송이 여기서 기원합니다.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의 기도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만이 구름을 거쳐 그분께 도달합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 활짝 열어 미사를 봉헌할 때 하느님 축복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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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생명의 길은 이어짐(connection)입니다.

사람이 끊어놓으면 하느님은 이으십니다.

이어짐의 연결이 생명의 길입니다.

단절되면 죽고 연결되면 삽니다.

끊어지면 죽고 이어지면 삽니다.

열림의 길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이어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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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절 고립이 지옥입니다.

단절이 죽임의 길이라면 연결은 생명의 길입니다.

하느님과 이웃, 자기와 연결의 끈이 끊어질 때 자살입니다.

끊어져 있을 때 살아있다 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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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용했던 기보 해설도 생각납니다.

‘연결은 힘의 원천이다.

연결이 끊어져 혼자가 되면 제 아무리 강한 존재도 부평초처럼 무력해진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아도

공동체와 연결이 끊어질 때 참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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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연결해야 합니다.

악마가 하는 일이 분열시켜 끊어버리는 일이라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연결시켜 일치 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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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의 기도를 통해 깨닫는 것은

그가 하느님, 이웃과는 물론 참 나와도 끊겨있다는 것입니다.

이.

건 살아있는 삶이 아니라 환상 속의 죽어있는 삶입니다.

강도짓을 하는 자,

불의를 저지르는 자,

간음을 하는 자,

세리를 완전히 분리시켜 제쳐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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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 참 나와의 연결이 끊긴 오직 나 혼자만이 단절된 바라사이의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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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자신을 개방한 세리는 하느님께 잘 연결된 모습입니다.

가난한 자신의 본 모습을 깨달아 참 나와도 연결되어있으니 세리가 진정 살아있는 자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 없어도 하느님과 이웃과 나와 연결되어 있으면 삽니다.

바오로의 하느님과의 연결은, 믿음의 끈은 그야말로 밧줄 같이 튼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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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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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바오로의 하느님 믿음의 끈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튼튼히 연결되어 있을 때 저절로 이웃과 참 나와도 튼튼한 연결도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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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생명의 길은 함께함(together)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함께 동반함이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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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베네딕도 봉헌회 회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진리입니다.

혼자나 몇몇이 한다면 힘은 힘대로 들고 며칠을 해도 끝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기쁨의 결여가 현대인의 불행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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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와 홀로의 균형과 조화가 필수입니다.

함께와 홀로는 영적 삶의 리듬입니다.

함께의 연대와 홀로의 고독의 삶의 리듬 중에 깊어지는 영적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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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십니다.

모두가 당신 자녀들이기에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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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복음의 영적 엘리트 바리사이는

함께 가야할 불쌍한 이웃들을, 죄인들을, 세리를 제쳐놓고 혼자 주님께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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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늦더라도 함께 가야 합니다.

혼자 열 걸음 앞서 가는 것보다 함께 한 걸음 가는 게 진정한 진보입니다.

약하고 부족한 형제들도, 서로의 약점이나 상처들도, 병들도 함께 지고 가야합니다.

진정 이게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제가 예전에 자주 들었던 예화도 생각이 납니다.

‘부부는 절대 혼자 하느님 나라에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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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점수 합한 다음 둘로 평균 내어 60점 넘어야 둘 다 하느님 나라입장이다.’

대부분 웃었지만 깊은 진리가 함축된 예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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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공동체적 인간 존재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일'보다 힘든 일은 없습니다.

하여 끊임없이 함께 기도하는 '하느님의 일'인 공동전례기도입니다.

함께 '하느님의 일'인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 기도에 충실할수록 '함께 사는 일'도 수월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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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연중 제30주일에 우리에게 생명의 길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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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의 길, 이어짐의 길, 함께함의 길입니다.

개방과 연결, 동반이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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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이웃에, 참 나에 개방, 연결되어 함께 살아 갈 때 구원의 행복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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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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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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