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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의 표지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013.10.29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9 조회수56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10.29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로마8,18-25 루카1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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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표지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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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희망’에 대한 묵상입니다.

희망해서 사람입니다.

사람이니까 희망합니다.

‘희망하는 인간’ 이 또한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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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혹자를 가리켜 괴물이라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듣고 보니 모습만 사람이지 이기적인 모습이 흡사 괴물 같이 생각됐습니다.

희망을 잃으면 거칠고 사나워져 누구나의 가능성이 괴물입니다.

희망을 지녀야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이웃에게,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희망입니다.

삶 자체가 희망의 표지가 될 때 이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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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2월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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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2월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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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을 쓰던 중 이면지 뒷면에서 읽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짧은 일기였습니다.

두 분 부부가 사이좋게 사셨던 모습이나,

선종 후 추기경의 맑은 얼굴 모습 또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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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울려 퍼지는 수도원이나

수도원 성전에서 매일 거행되는 미사 역시 희망의 표지입니다.

희망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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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성무일도 중 마음에 와 닿은 희망에 관계되는 말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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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3,4).

‘주님만 바라고 너는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

‘하느님께 바라라.

나는 다시 그님을 찬미하게 되리라. 내 낯을 살려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구원의 하느님, 당신은 정의의 기적으로 우리에게 응하시나이다.

온 땅의 끝이며 머나 먼 바다들의 희망이시여.’

‘주여, 이 소리 들으소서.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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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희망을 북돋아주는 성무일도의 은총입니다.

우리 궁극의 희망은 하느님입니다.

세상 것들에 희망을 둘 때 결과는 환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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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용했던 구절도 생각납니다.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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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신 하느님만이 있을 뿐이다’로 바꿔 말해도 무방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하고 두려운 미래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고는 미래도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희망의 출구, 희망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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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출구가 막힌, 희망의 빛이 꺼진 절망의 자리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하느님만이 희망의 출구요 희망의 빛입니다.

복음의 예수님이나 독서의 바오로는 진정 희망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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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그대로 희망에 대한 비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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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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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희망은 바로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말 그대로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희망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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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희망의 표지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겨자씨가 자라는 모습은 내적성장의 희망 나무를,

밀가루를 부풀리는 누룩은 희망 효소를 상징합니다.

이런 희망 나무 같은 내적성장의 삶이나 희망 효소와 같은 삶으로

이웃을 희망으로 부풀리는 삶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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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예수님과 바오로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가 겪는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장차 계시될 영광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허무의 지배아래 있는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누리리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오로의 희망의 지평은 고통으로 신음 중인 피조물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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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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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오늘날 하느님을 바라며 고통으로 탄식하는 피조물들과

사람들 마음을 대변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고통 중에도 희망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바오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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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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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때 매 순간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희망으로 충만한 구원의 삶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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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 희망으로 충만케 하시어

살아있는 희망의 표지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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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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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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