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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깊이에로의 강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9 조회수787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복음: 루카 13,22-30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벨리니(Bellni, Giovanni) 작, (1475),  피렌체 콘티니 보나코씨 콜렉션


     < 깊이에로의 강요 >

     

  이무석 교수에게 술만 마시면 우는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예의 바르고 조용하고 수줍어하지만, 술만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주먹으로 옆 사람을 치기도 하고 어릴 때 강에서 물놀이하다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친구들은 술에 취한 그의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무척이나 마음을 터놓기가 어려운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왜 술을 마시면 용감해지는 것일까요? 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구피질(archipallium)과 신피질(neopallium)입니다. 구피질은 동물적 기능을 담당하여, 호흡, 혈압, 식욕 중추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특히 감정의 중추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분노, 쾌감의 중추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신피질은 생각과 판단을 주관하는 곳이고, 도덕적 판단이나 자기조절이 신피질에서 담당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사실 신피질의 기능 덕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술은 뇌에서 신피질의 작용을 둔화시켜 억제되어 있던 구피질의 감정들이 솟아나게 하는 화학적 작용을 일으킵니다. 평소에도 감정은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그것을 신피질이 통제하고 있었다면, 술을 마시면 신피질의 그 통제력을 잃기 때문에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평소와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무척이나 억누르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여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어려웠던 인간관계가 호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여는 즐거움을 또 느끼고 싶어 합니다. 친밀감의 유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나서 느끼는 친밀감은 마약과 같아서 자꾸 술의 힘을 빌려 관계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무석, 친밀함, 228-231]

 

그렇다면 도대체 술을 마시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와 친해지려고 하는 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술이 깨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이 사람은 또 누구인가요? 사람을 본다면 나는 어떤 상태일 때의 그 사람을 참으로 그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보다는 이성이, 이성보다는 마음이 그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빠르게 변하고, 마음보다는 이성이 더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느님이 머무르는 차원으로 그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발생한 믿음이나 사랑은 절대 감정이나 이성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절대불변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가장 나다운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마음의 차원인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을 만났는데 냉담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성령기도회에서 성령이 뜨겁게 내려오는 체험을 해서 한 때는 열심히 했었는데, 사는 것이 바빠지다 보니 이제는 나가야 함을 알면서도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기도회와 같은 곳에서 오는 하느님의 체험은 마음적 차원보다는 감정적 차원이 많습니다. 물론 좋은 강의도 많이 들으면서 정신적인 차원으로 하느님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감정적-이성적 차원의 영성을 영적인 차원으로 높여놓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빨리 끓어올랐다가 또 빨리 식어버리기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고, 길에서 말씀을 들었다는 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른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감정적인 차원으로만 받아들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모시지 못한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미사에도 참여하고 성경말씀도 공부한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모르신다는 것은 그만큼 변하기 쉬운 차원까지만 당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마음까지 그분을 모시지 못하면 그분은 온전한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까지 그분을 모신 사람의 특징은 한 순간도 그분을 잊지 않고 그분 뜻대로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를 당신 안에 모셨을 때는 당신 뜻대로 하시는 것은 하나도 없으시고 매순간 당신 마음 안에 계신 당신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대로만 사셨습니다.

 

바다에도 표면은 정신없이 변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깊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변하지 않으려면 삶의 수준이 육체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깊어져야 합니다. 가슴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그 안에서 맺혀지는 열매는 하느님을 가장 닮았기 때문에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완전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씀을 듣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그분을 얕은 곳이 아닌 우리 가장 깊은 곳, 즉 우리 마음 안에 모시고, 그분의 뜻만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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